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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남 시인 / 슬그머니
오늘의 구름을 자네에게 보내네. 뭉클한 기운이 계절을 건너고 그러는 동안 꽃이 피는 순간을 이해하기로 했네.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이 구름의 발성법으로 소리를 내더군. 노래를 불러주세요 기꺼이 앵무새가 되어주세요. 바람이 놀다간 자리에 비밀이 풀리고 있었네. 비밀을 다시 감아야 하는 자네는 술래이면서 숨어야하는 사람이라네. 어제를 뭉치니 어제가 되더군. 어둠은 삼켜도 어둠이었지. 말린 어제가 어둠을 끌고 갔다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은 채 돌아갔다네. 그립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밤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하더군. 오늘을 넘기는 자네는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나. 화살이 된 말에 심장을 찔리고 심장이 단단하고 심장이 반짝이고 그러는 동안 새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이해하기로 했다네. 사이프러스 긴 팔이 날카로운 글자를 쏟아내더군. 날이 저문다 날이 저문다 중얼거리는 감정을 보았네. 잠시 자네라는 환유를 생각해봤네만, 누가 흘린 것인지 궁금하지 않았네. 지난여름 못다 쓴 글자가 문턱에 걸터앉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이네.
월간『모던포엠』 2019년 12월호 발표
강재남 시인 /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안녕이라는 차갑고 한가로운 말을 흘려보냅니다. 지금은 비가 오고 문득 비의 기원은 변덕스러운 초여름이라는 것을 그리고 담벼락에 장미가 만발한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꽃봉오리가 차례를 기다리는 순정한 계절입니다. 먼저 핀 꽃이 먼저 시드는 성스러운 담장을 가졌습니다. 일찍 살다 가는 것들에 손 흔드는 한낮입니다. 잠시 상실한 꽃의 마음이 되어 세상 끝으로 갑니다. 지금은 비가 오고 당신은 노래를 부릅니다. 매혹적인 아버지, 푸른 담벼락에 다정한 노래가 굴러다닙니다. 노래는 알지 못하는 요일을 지나 달개비 꽃병을 지나 산도라지 제비꽃 등성이를 돌아 나옵니다. 쪽빛으로 물들어 가는 곳이 당신의 거처입니다. 그리움의 색이 이러하다고 말한 당신은 먼저 간 꽃을 먼저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안녕, 안녕히, 중얼거리며 화병에 꽃을 꽂습니다. 오래된 꽃은 박제된 기억이 됩니다. 말라가는 전생을 꽃은 알기나 할까요. 꽃잎에 비의 문장을 채웁니다. 노래가 굴러다니는 곳마다 알지 못하는 요일이 지나고 무심한 날이 지나고 깊고 서늘한 이름이 지납니다. 당신이 짚었던 길을 내 발자국으로 눌러봅니다. 당신은 한낮이 되거나 일기 밖으로 스며듭니다.
반년간지『두레문학』 2019년 상반기호 발표
강재남 시인 / 이를테면 고양이
계단을 열어봐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은 노래가 된대 그것은 어둡고 모호한 이미지 어쩌면 천재성을 낭비한 고흐의 해바라기
빛을 수확했어 꼭 필요한 건 팔레트가 아니었지 산란하는 빛은 제자리걸음에 능했고 가난한 한낮이 인상적으로 기울고 있었지
빛을 고양이라 쓰니 고양이가 되었다 졸음을 깨무는 해바라기도 고양이가 분명해
계단에 고양이 울음이 굴러다녀
노래와 울음은 분리되지 않는 속성을 가졌다 그러므로 아득하고 고요한 날은 계단을 열어야 해 노래가 튀어나오는 계단에서 해바라기를 생각해야 해
비유가 없는 계단이 읽히지 않아 사랑할 대상이 없다로 바꾸어 읽는다 붓끝에서 해바라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신성한 씨앗의 방식으로 팔레트에 매장된 울음의 색으로
시간을 관통하는 문장이 꽃술로 그려진다
둥글게 말린 빛이 고양이 눈동자였다는 걸 알았을 때 닫힌 계단을 디뎠어
미끄러지는 상상은 유쾌했지 오래된 생각에서 생각이 빠지고 함부로 욱여넣은 고흐가 비명을 쏟아내고 있었다
계간 『딩아돌하』 201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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