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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시인 / 검지에 핀 꽃
감자 썰다 검지에서 피 뚝 떨어진다 아리다
한 시절 아리게 산 적 있었지 하얀 광목천에 검지를 갈라 노동해방을 쓰고 한번은 검지를 깊게 베어 원직복직을 외치며 혈서를 썼는데.
지금 그 검지에서 붉은 피 뚝뚝 떨어진다 하염없이 피가 흐르고 도마를 타고 싱크대로 흘러가는데 옹이 박힌 손끝에서 꽃망울 터진다
나는 지금 무어라고 쓰고 싶다 한번 꽃처럼 피어 가슴 깊은 상처를 다시 남기고 싶다
조혜영 시인 / 언덕 위의 그 방
언덕위에 그 방 사글셋방 정거장 가는 길은 가파르다 송림4동 철탑 밑의 작은 내 방 동화책 만한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침침한 형광등 불빛 마른 장작 같은 나무대문 15년 만에 찾아와 나를 만난다 야근하고 돌아와 라면 끓이던 번개탄으로 붙 붙이면 새벽녘에야 언몸 달래주던 그 방 숨죽여 노동법과 역사를 토론하던 방 선배의 눈빛에 마음 주다 반성문 쓰며 울었던 방 노조를 만들던 날 동료들과 부둥켜안은 방 스무살 더듬이가 유난히 빛을 내며 숨고르기 벅찼던 그곳 구멍가게 막걸리 좌판도 철물집 할아버지도 모두 여전한데 사글셋방 남겨놓고 나만 멀리 떠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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