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길나 시인 / 물의 표정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0.

김길나 시인 / 물의 표정

 

 

                                              1200톤급 천안함 함미가 북위 37도 40분 백령도

                                              남단 1마일 해상에서  침몰 20일만에 바다 위로

                                              인양되었다.

 

 

  함대가 동강나서 생사가 갈렸다

  바다 밑에서는 숨 막히게 생의 유속(流速)이 빨라졌다

  출구 없는 순간, 빨라진 유속이 다급하게 지구 밖으로까지 흘러갔다.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을 지은 건 바다였으므로

  표면의 바다는 유려했고 해변의 사람은 그 바다 이름답다 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막을 뚫기 위한 잠수는 실패했고

  물 속에서의 사건진행은 발각되지 않았다

  인양된 배의 배수작업이 시작되자

  이제야 콸콸 쏟아져 나오는 저것! 물이다

  물!

  죽음을 해산한 양수가 뱃속에서 철철 쏟아져 나온다

  물!

  턱 코 정수리까지 차올라 왈칵 숨통을 틀어막은 것이 쏟아져 나온다

  물!

  생각하는 존재에게서 가공할 폭력으로 생각을 정지시키려 할 때 전율의

  밑바닥에서 극한의 고독을 불 켜게 한 것, 그것이 도도하게 쏟아져 나온다

  물!

 

  쏟아져 나온 물 속에는 그러므로 생명과 절명의 간극이 펼쳐낸

  극지의 풍경이 들어있다. 미쳐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절박한 떨림으로

  극지의 풍경이 요동친다. 목소리 없는 46인의 마지막 절규가 물을 뚫고

  솟쳐 나온다. 물의 표정 안에는 숨겨진 천둥과 고요가,

  번개와 암흑이 비밀리에 번뜩이고 있다

 

  바다로 흘러내리는 저 물! 물이 물을 씻는,

  오늘은 야누스의 물이 생명을 길러내는 어머니를 뒤쪽 얼굴로 숨겼으므로

  하여, 내일은 또 후풍이 심상치 않게 불어올 것이므로

  슬픔의 깊이만큼 난기류에 흔들리는 인간파도가 노도(怒濤)로 뒤척이며

  바다의 파고를 넘나들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 발표

 

 


 

김길나 시인

1940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 1995년 시집 <새벽 날개>를 상자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빠지지 않는 반지』(문학과지성사, 1997)와  『둥근 밀떡에 뜨는 해』(문학과지성사, 2003)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