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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등우량선(等雨量線) 1
1 나는 폭포의 삶을 살았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폭포 주위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처럼 살 수는 없었을까 쏟아지는 힘을 비켜갈 때 방울을 떠 있게 하는 무지개 ; 떠 있을 수만 있다면 空을 붙든 膜이 저리도록 이쁜 것을
나, 나가요, 여자가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아냐, 이 방엔 너의 숨소리가 있어야 해 남자가 한참 뒤에 중얼거린다
2 이력서를 집어넣고 돌아오는 길 위에 잠시 서서 나는, 세상이 나를 안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 실평수처럼 늘 초과해 있는 내 삶의 덩어리를 정육점 저울 같은 걸로 잴 수는 없을까 나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이 마구 자라 수위가 바로 코밑에까지 올라와 있는 생활
나는 언제나 한계에 있었고 내 자신이 한계이다 어디엔가 나도 모르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차마 내 앞에선 말하지 않는 불구가 내겐 있었던 거다 커피 숍에 앉아, 기다리게 하는 사람에 지쳐 있을 때 바깥을 보니, 여기가 너무 비좁다
3 여기가 너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인도에 대해 생각한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 ; 물 위 그림자 큰 새가 피안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기저해 쓰러져버린 인도 청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까지 갔다가 산그늘이 잡아당기면 딸려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에 대해 생각한다
황지우 시인 /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무궁)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황지우 시인 / 발작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기적 아녀
황지우 시인 / 붉은 우체통
버즘나무 아래 붉은 우체통이 멍하니, 입 벌리고 서 있다 소식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思想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비록 그대가 폐인이 될지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겠노라 고 쓴 편지 한 통 없지만,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길가에서 안개꽃 한 묶음을 사는데 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뱃가죽에 타이어 조각을 대고 이쪽으로 기어서 온다
황지우 시인 /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槍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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