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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그렇게 2월은 간다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홍수희 시인 / 기도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꽃밭에 꽃이 피면 내 마음 그 찬란한 꽃잎이 아닌 꽃대궁을 받쳐든 말없는 그늘이게 하소서
당신의 뜨락에 새가 울면 내 마음 소리 높여 지저귀는 노래가 아닌 그 음계(音階)를 받쳐든 잔잔히 술렁이는 가지이게 하소서
어두움이 깊어갈수록 빛깔이 짙어지는 별빛처럼 실눈을 뜰수록 거울을 닮아가는 둥근 보름달처럼
고개를 숙이고야 숙인 만큼 더욱 붉어지는 노을처럼 내가 작아지는 만큼 점점 커져 오르는 그리움처럼
사랑은 비로소 가진 것을 한없이 내어줄수록 더욱더 차 오르는 요술 항아리
사랑은 마침내 고독의 겨울을 사르고서야 눈부시게 도착하는 하느님의 봄빛 연서(戀書)
그러하오니 주여,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 주소서
가장 초라한 손을 내가 먼저 따뜻이 잡게 하시고 가장 누추한 가슴을 내가 먼저 설레며 방문하게 하시어
이 세상 가장 슬픈 귓가에 먼저 가 닿는 나 은은한 종소리가 되게 하시고
이 세상 가장 음습한 골짜기에 먼저 가 닿는 나 넘치는 햇살이 되게 하소서
홍수희 시인 / 기도하세요
마음이 슬프고 괴로울 때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세요 나보다 더 슬픈 그를 위해 기도하세요
마음의 상처가 짓누를 때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세요 나보다 더 아픈 그를 위해 기도하세요
사는 것이 문득 외로워질 때에 꿈꾸는 일조차 힘겨울 때에 이 세상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세요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눈물로 지새는 이를 위하여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는 너와 나를 연결해주는 신비로운 끈,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지네요
마음에 한없이 찬비 내릴 때 두 손을 모아 기도하세요 내 영혼 슬픔은 희미해지고 기쁨이 나를 채울 거예요
홍수희 시인 / 꽃 편지
꽃 피더니 꽃이 집니다 산에도 마을에도 꽃이 집니다 강가에도 철길에도 꽃이 집니다 그리운 내 맘에도 꽃이 집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다고 보지 않으면 잊혀지다가 불현듯 또 그렇게 생각나다가 잊어지다가 쓸쓸히 지워지다가 다시 또 잠 못 드는 날 있겠거니 꽃 진 자리에 꽃 피겠거니 보고픈 정 어찌 다 지워지겠는지요
지는 꽃 내 마음에 거두지 않고 오셨던 그대로 놓아둡니다
홍수희 시인 / 꽃비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여 마음에 그 사랑을 들이기 위해 낡고 정든 것은 하나 둘 내치시기를
사랑은 잃어 가는 것이다
보라, 꽃잎도 버릴 때에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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