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이 시인 / 싸움의 기술
귀에서 자꾸 기차 바퀴 소리가 들려, 덜커덩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지팡이를 흔들며 들어오네 농담처럼 생긴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공연은 딱 질색이야 내 혐오는 너무 질긴 게 탈이지 예고도 없이 불이 나간 객차가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만 실컷 울어보자고 결심했어 그러나 불이 켜지고도 나는 줄곧 울고 있었지 계략이 떨어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는 뜻 스스로 호랑이라고 믿는 날랜 살쾡이 어느새 손바닥에 이겨 붙었던 흙먼지 탈탈 털고 휘파람을 부네 먼저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귓속에 장착해 둔 그러나 고작 너는 눈 꼬리 긴 살쾡이 나는 차라리 우아한 패배를 원하네
귓속에서 자꾸 기차 바퀴 소리가 들려 명백하고도 무거운 이 바퀴를 달고 그리 슬프지 않은 저녁에 당도하고 싶을 뿐이야 가도 가도 캄캄한 울음 속을 그 남자 지팡이를 흔들며 걸어간다 결국 이 싸움의 패인은 울음이었으나 그렇다고 네가 이겼다는 증표는 아니야 어느 온순한 영화의 반전처럼 이 울음의 기차는 또다시 너라는 간이역 농담처럼 생긴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공연을 덮치게 될 것이므로
웹진 『시인광장』 2010년 9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영미 시인 / 현수막 (0) | 2020.06.15 |
|---|---|
| 황정산 시인 / 밤꽃 아래 서다 (0) | 2020.06.15 |
| 김지율 시인 / 락앤락 (0) | 2020.06.15 |
| 홍수희 시인 / 그렇게 2월은 간다 외 4편 (0) | 2020.06.15 |
| 황지우 시인 / 등우량선(等雨量線) 1 외 4편 (0) | 202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