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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꽃이 피기도 전에
당신이 내 안에서 피고지기를 벌써 몇 번인지 몇만 번인지
나의 첫사랑, 그러나 나는 이제 당신을 위해 봄이 오기도 전에 꽃씨를 심고 꽃이 피기도 전에 그 향기에 취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내게 죽음이라면 또한 당신이 내게는 생명이란 걸 당신이 내게 아픔이라면 또한 당신이 내게는 기쁨이란 걸 당신이 내게 끝없는 미로迷路라면 또한 당신은 반듯한 목적지란 걸
이제 나는 알듯도 해요
당신이 내 안에 피고지기를 이후로도 거듭 반복되겠지만 이제 그것으로 당황하지 않아요
꽃이 피기도 전에 나는 당신의 향기에 취할 수도 있어요
홍수희 시인 / 낙엽 한 잎
나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가봅니다 낙엽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여윈 가지 부르르 전율합니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무수한 것들 비단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아직 내 안에 팔랑이며 소란스러운 마음가지 끝 빛 바랜 잎새들이 있습니다 저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해볼까요 물론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홍수희 시인 / 낙엽이 나에게 건네 준 말
어느 날 차창에 낙엽 한 잎 노란 몸짓으로 날아오더니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건네주는 말 생각해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뭐겠니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네 어느 익숙한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아니면…… 머뭇거리는 나에게 낙엽이 가만히 속삭이는 말 생각해봐, 내가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받아 줄 사람이 거기 없을 때 가슴 저미는 일이야 두 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는 그 일인 거야 바람만 불어왔다 불어가 버리는 혼자 남은 괴로움이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주어진 기회를 붙잡으렴
홍수희 시인 / 내 마음에 흰 눈이 내릴 때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에 흰 눈이 내립니다
눈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등을 대고 서로의 가슴을 읽다 입술을 앙다물고 돌아서는 쓸쓸한 저녁 흰 눈이 내립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 어찌 늘 기쁨은 아닌 줄은 알면서도 보란 듯이 또 보란 듯이 흰 눈만 서늘한 내 가슴에 하득하득 흩어지며 내립니다
홍수희 시인 / 내 마음을 주고싶은 사람
부드러운 음성을 가진 당신에게는 애정 가득 담긴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여유로움 간직한 당신에게는 포근함 가득 담은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에게는 끝이라도 아깝지 않을 내 모든 것 다 담은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오직 한 사람 당신에게만 내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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