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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수희 시인 / 내 안에 있는 행복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7.

홍수희 시인 / 내 안에 있는 행복

 

 

새처럼

수줍은 그것은

소매를 붙잡으면

이내 날아가고 맙니다

 

첫눈처럼

보드라운 그것은

움켜쥐면 사르르 녹고

맙니다

 

그러나

바위처럼

단단한 그것은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행복,

찾으면 찾아지지 않고

놓아줄 때 비로소

보여집니다

 

 


 

 

홍수희 시인 / 내 잔이 넘치나이다

 

 

때로는 당신의 사랑이

나를 힘들게 하시었네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당신이 불어주던 휘파람 소리

 

그 길이 아니면 아니 된다고

나를 인도하시었네

 

어찌 편한 길은 그대로 두고

비탈진 그 길로 인도하시었네

 

사랑의 언덕은 높고도 험해

십자가 없이는 오르지 못하리 당신이 두 팔 벌려 서 계신 그곳

 

그곳에 나 다다를 때까지 임이여, 휘파람을 불어 주소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홍수희 시인 / 내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내가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당신의 부재가 서러워서가 아닙니다

만질 수 없는 당신이 야속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침묵이 너무 섬세한 까닭입니다

 

내가 지금 돌아서서 우는 까닭은

당신의 등이 서러워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이 모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냉정함이 모다 나를 위한 배려인 까닭입니다

 

세상이 나를 두고 저만치 멀어 보여도

고독이 함박눈처럼 창틀을 하얗게 뒤덮어도

내 마음이 이렇게 풍요로운 까닭은

님이여, 당신이 내 안에 계신 까닭입니다

 

오늘도 잎 떨어진 스산한 뜨락,

왼 종일 내 영혼 서성이며 설레이느니

내 마음이 이렇게 붉어지는 까닭은

님이여, 당신만이 나를 태울 불꽃인 까닭입니다

 

내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당신의 침묵이 너무 섬세한 까닭입니다

당신의 등이 너무 뜨거운 까닭입니다

 

 


 

 

홍수희 시인 / 내일은 비

 

 

슬픔도

적당할 때 눈물이 난다

 

태풍의 눈 속인가

너무나 고요한 내 마음이여

 

그대와 나 사이

이다지도 깊은 심연을 두고

 

하루는 너무 조용히

왔다가는 내게서 멀어져간다

 

그리고 내일은 비,

 

 


 

 

홍수희 시인 / 눈꽃

 

 

나 그렇게 되었으면,

 

네 마음이 외로울 때에

겨울 창문을 열면

잎 떨어진 가지 위에 피어난

하얀 눈꽃이 되었으면

 

나 그렇게 되었으면,

 

네 가는 길 고달프고 힘겨울 때에

내가 앞서 잠시 반짝이다가

구태여 그 자리 주저앉지 않고

햇빛에 사르르 녹아도 좋은

 

나 그렇게 되었으면,

 

그대 가다가 넘어질 때에

넘어진 바로 당신의 무릎 앞으로

우연인 듯 내려앉은 눈부신 미소

 

나 그렇게 되었으면,

 

당신이 눈물로 봄을 기다릴 적에

나 먼저 겨울 동산에 녹아

하롱하롱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로

 

......

아, 나 눈꽃이 되었으면

 

 


 

홍수희 시인

1995년 문예지 <한국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이육사문학상 본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 부산가톨릭 문인협회, 부산 문인협회, 부산 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시집으로 [달력 속의 노을](1997,  도서출판 빛남)과 [아직 슬픈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2003, 도서출판 띠앗), [이 그리움을 그대에게 보낸다](2007, 도서출판 한솜),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2019, 도서출판 해드림)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