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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 시인 / 혼자 가는 길
내 마음 저 편에 너를 세워 두고 혼자 가는 길, 자꾸만 발이 저리다 잡목 숲 고요한 능선 아래 조그만 마을
거기 성급한 초저녁별들 뛰어내리다 마는지 어느 창백한 손길이 들창을 여닫는지, 아득히 창호지 구겨지는 소리, 그 끝을 따라간다
둥근 문고리에 찍혀 있는 지문들 낡은 문설주에 문패자국 선연하다
아직 네게 닿지 못한 마음 누르며 혼자 가는 이 길 누가 어둠을 탁, 탁, 치며 걸어오는지 내 마음의 둥근 문고리 잡아당기는지
강문숙 시인 / 천사표 그녀
피아노는 거대한 한 그릇 밥이었다. 높은음자리표처럼 큰오빠 수술비와 조카의 학비는 올라가고, 착하다는 말을 밥처럼 먹고살지만 늘 허기가 졌다.
사랑했던 첫 남자 파혼선언하고 돌아설 때도 뜨거운 밥 한 끼 먹여보내려고 부엌에서 종일 서성거렸다.
도마질하다가 손끝을 베었을 때, 핏물보다 눈물을 먼저 흘리기도 했다.
피아노 건반은 그녀가 건너뛰어야 할 세상의 징검다리였는지도 모른다.
천사표 그녀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래요?
울부짖는 그녀에게 의사는, 갓 태어난 아기가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둘러댔다.
시집을 엮는다는 핑계로 거의 한 달이 넘어서야 병 문 갔다. 밋밋해진 가슴을 여밀 생각도 않고,
살림하랴 글쓰랴 얼마나 힘들겠노? 잔이 넘치도록 인삼차를 부어준다.
염치없이 블라우스를 밀고 나오는 불룩한 내 젖가슴이 왜 이렇게 민망한지.
그녀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데 창 너머로 날아가는 하얀 나비 날갯짓, 눈이 시리다
강문숙 시인 / 고분 속에 살다
여자가 조심스레 문을 연다. 순간 커다란 눈동자 같은 내부가 번뜩인다. 침입자를 경계하듯 소요하는 먼지들. 먼지들의 입을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엉거주춤 고분 속으로 들어선다. 고여 있던 시간들이 출렁이다가 토기의 빗금문양을 타고 흘러내린다. 무명 머릿수건을 탁탁, 털며 쌀 안치러 가는 여자의 뒤를 따라간다. 아궁이에서 매캐한 연기가 번지고 누군가 기침을 해댄다, 그 소리 고분 밖의 생애까지도 목메게 할 것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죽음과 함께 밥 먹고 숨쉬는 시간들 쭈그러드는 쌀자루가 안절부절못했겠지만, 고분 속은 무풍지대 최후의 안식처였을까. 고분 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찬바람 불어 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철커덕, 누군가 고분의 입구를 막는다. 아직도 그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를 남겨둔 채, 서둘러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콘크리트고분 속으로 가는 뒷모습들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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