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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눈빛
당신의 눈빛이 내 마음에 꽂히자마자 퍽, 소리가 났습니다 내 안의 것들이 한꺼번에 풀썩 주저앉는 소리였어요 어떻게 알았지요?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찬찬히 읽고 있었습니다 감추고 싶었는데 다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홍수희 시인 / 능소화 꽃잎에 울다
한 발짝만 단 한 발짝만 물러나면 내가 보일텐데요 내 슬픔이 보일텐데요 내 분노의 정체도 보일텐데요 내가 내게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이리도 어려워요 돌아가는 세상이야기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이리도 어려워요 한때는 그리도 쉬워 보이던 것 내 웃음소리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밤낮 이글거리는 머릿속 한 발짝만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저 헝클어져 치열한 파도의 소용돌이 잠잠해질 것 같은 데도요 빗줄기 속 불면의 밤들은 아랑곳없이 아스팔트는 뜨겁게 침묵하는데 주홍빛 능소화만 흐드러지게 피었어요 그래서 그런데 눈물만 나요
홍수희 시인 /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은 포기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바램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지우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그 기대가 저 혼자 자라 내 마음의 순수를 갉아먹기 전에
결점이 많은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울고 웃는 그대로의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이 어느 날 기대도 없이 등뒤에 감춰둔 꽃다발처럼
놀라운 선물을 고백하도록 사랑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홍수희 시인 /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대의 한숨이 들릴 만큼의 거리에만 서 있을게요
그대의 눈빛이 보일 만큼의 거리에만 서 있을게요
다시는 아프지 않게 너무 가까이 서 있지 않을게요
다시는 아프지 않게 너무 멀리에 서 있지도 않을게요
언제나 이웃해 있는 비오는 날의 두 그루 은행처럼
온몸이 젖어도 외로웁지 않게요 어깨 한 번 으쓱하며 웃고 말게요
홍수희 시인 / 마음의 간격
전화 몇 번 하지 않았다고 내가 그대를 잊은 건 아니다 너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내 마음이 그대를 영영 떠난 것은 아닌 것처럼 그리운 그대여 부디, 세상의 수치로 우리들의 사랑을 논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그대와 내 마음의 간격 어느 비 오거나 눈 내리는 날에 홀로 뜨거운 찻잔을 마주 한 날에 그 누구도 아닌 네가 떠오른다면 이미 너는 내 곁에 있는 것 우리의 사랑도 거기 있는 것 이 세상 그 무엇도 너와 나 사이 다정한 마음은 어찌하지 못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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