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송희 시인 / 빙점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8.

이송희 시인 / 빙점

 

 

  아파트 좁고 긴 통로에 들어서자

  나보다 먼저 도착한 어둠이 기다린다

 

  여기는 내 방인가 네 방인가,

  찬바람만 둥지 튼 방

 

  누군가 내 방에 허락 없이 다녀갔다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이름들로 도배된

 

  불안한 그림자 하나

  창밖을 서성인다

 

  독화살을 맞은 마음, 말들이 새고 있다

  유배된 남녀가 부둥켜 울던 저녁에,

 

  두 귀를 틀어막은 벽,

  소리들을 지운다

 

  여린 나비 날갯짓에 하늘 한 쪽이 무너지고

  네게로 가는 문은 단단하게 닫혀 있다

 

  허공이 얼어붙는다,

  낯선 너의 뒷모습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0월호 발표

 

 


 

이송희 시인

1976년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국문과에서 '서정주 시 텍스트의 인지시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음.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봄의 계단>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환절기의 판화』(고요아침, 2009)가 있음. 현재 전남대와 조선대 국문과에 출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