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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아름다운 선택
숨 고르는 길목마다
오던 길도 갈래지어 펼쳐집니다
눈 한 번 깜박일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달콤한 것보다는 오히려 메마른 것을
넘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것을
평탄한 길보다는 굽고 후미진 길을
아름다운 이여,
이것이 당신께 닿는 외길입니까
홍수희 시인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생각해보니 벗이여, 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너는 지금 걷고 있구나 그대와 같은 생각으로 마음으로 그대와 같은 아픔으로 갈증으로 하물며 그대와 똑같은 형편으로 인생을 걷는 이 결코 없으니 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너는 걷고 있는 게 틀림없구나 그러니 조금은 자부심을 느껴도 괜찮지 않겠나 벗이여, 삶의 무게에 휘청대다가 잠시 주저앉아 먼 산을 바라본대도 눈물짓지 말자 벗이여, 자수刺繡의 어설픈 뒷면을 보고 미리 절망하지는 말자 벗이여, 지금 우리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아무도 대신 그려줄 수 없는 고유한 화폭을 수놓는 중이니
홍수희 시인 / 야생화
너에겐 그늘이 있었네 눈가 푸르스름한 이미 예고된 그늘이 네게 있었네
깊고 후미진 산 속, 가시 많은 덤불 비집고 나와 함초롬히 이슬 머금고 피어 있는 너
죽음이 없이는 부활 없느니, 온전히 다시 죽기 위하여 낮게 아주 낮게 엎드려 피어 있는 너
단 하루를 산다 하여도 온몸으로 다시 살기 꿈꾸는 너는 은총의 길이 만큼 그늘을 드리운 너는
이 세상 가장 어두운 산 속, 비바람 온통 가슴에 안아 고통을 관통한 화사한 부활이 되고픈 너는
너에겐 그늘이 있었네 눈가 푸르스름한 별빛 흩어지는 그늘이 네게 있었네
홍수희 시인 / 오늘은 비
하루종일 어두웠다 한낮에도 나는 내 안에 불을 켜지 못했다 어두운 내가 어두운 내 안에서 나와 어두운 하루종일 어둠을 만지작거렸을 뿐이다 역시 어두운 저녁 어두운 여덟 시 여전히 어두운 TV화면이 입을 열었다 마침내 하늘이 단비를 뿌렸습니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던 서울에서는 궂은 비가 이어진 가운데 초속 20m가 넘는 돌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특히 강풍특보가 내려진 해안지방에는 최고 초속 30미터가 넘는 돌풍도 불었습니다 비바람에 암흑현상까지 나타나 차량들은 한낮에도 전조등을 밝혀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하늘이 단비를 뿌렸습니다 그제야 환하니 내 안에 불이 들어온다 가뭄으로 쩌억쩍 갈라지던 내 마음의 풍경에도 단비 내리려 하루 종일 어두웠구나 오늘 뒤집힌 우산 아깝지 않구나 세상 버릴 게 아무 것도 없구나 그랬구나 참말 그랬구나
홍수희 시인 / 외로움이 말을 건넬 때
외로움은 외로움을 알아본다 저를 닮은 얼굴을 알아본다 너의 외로움이 내 안의 외로움에게 끈질기게 말을 건네는 이유가 그것 어깨 위에 바람을 싣고 쓸쓸히 돌아서던 뒷모습이여, 내 안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을 불러 세워 따뜻이 손 잡아주고 싶지만 세상에는 애초에 시작하지 말아야 할 만남이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도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외로움이 저를 닮은 외로움에게 눈 시리게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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