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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우리라는 말은
얼마나 다정한가 ´우리´라는 말 그보다 따뜻한 말 나는 알지 못하네
눈이 맑은 그대 얼굴 바라볼 때에 외로웁지 않겠네 우리 함께 한다면
너와 내가 혼자 서 있을 때엔 빙산처럼 차가웠던 잿빛 슬픔도
´우리´라는 말 앞에선 봄눈 속의 아지랑이 없던 용기 불쑥 솟아오르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라는 말 그보다 사랑스런 몸짓 알지 못하네
아무렴 험한 세상 거센 비바람에도 두려울 것 없겠네 우리 함께 간다면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그 말이 너와 내가 노래하며 다정히 손잡을 때에
눈부시게 웃으며 피어난다네 불꽃보다 뜨거워라 ´우리´라는 말
홍수희 시인 /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잊어줄 것은 잊어주자 나무도 한 해를 고개 숙여 감사하며 품었던 아픔 품었던 오해 훌훌 벗어 가볍게 서지 않느냐
한 발만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보이지 않느냐 상처 입기 쉬운 우리 마음도 저마다 제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싸리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비워버린 가슴으로 다시 만나자 바람 씽씽 부는 겨울벌판에 서서 뜨거운 손을 붙잡고 울자
우리 다시 그리운 이름이 되자 한때는 나를 슬프게 했던 사람이여 사람이여,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홍수희 시인 / 이월 편지
어딘가 허술하고 어딘가 늘 모자랍니다
하루나 이틀 꽉 채워지지 않은 날수만 가지고도 이월은 초라합니다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 틈새로 가까스로 걸려 있는 날들이여,
꽃빛 찬란한 봄이 그리로 오시는 줄을 알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일년 중에 가장 초라한 2월을 당신이 밟고 오신다니요
어쩌면 나를 가득 채우기에 급급했던 날들입니다
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더라도 조금은 부족한 듯 보이더라도
사랑의 싹이 돋아날 여분의 땅을 내 가슴에 남겨두어야 하겠습니다
홍수희 시인 / 인연
아무렴 잘 있겠지 하면서도 자꾸 맘이 켕긴다 한마디 소식 없이 지내면서도 행여 외롭지는 않을까 시선은 자꾸 너의 마음 밭을 서성거린다 물론 네게는 나보다 가까운 사람 곁에 있지만 이래도 저래도 생각 키우는 건 네가 너무 여린 가슴을 지녔기 때문, 부디 행복하여라 언제나 봄날처럼 환히 웃기를 나는 이 쪽 반대편 별 끝에 서서 너를 위해 불 하나 태운다
홍수희 시인 / 입추(立秋)
너는 또 어드메 깊은 골짝에서 보이지 않는 손 그토록 숨기었다가 자꾸만 흔들며 다가오는가
온 여름을 거부 하여도 그저 느즈막한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가슴 속 차거운 눈물로 찾아오는 이
지나오면 회한은 그 어디에서나 비릿한 흰 앙금으로 슬프게만 맺혀져 오는 것인가
어찌하란 말이냐, 내 좁은 혼(魂) 속엔 다 담지 못할 이다지도 서글픈 그리움이여
움켜쥐기엔 너무 멀어진 기억 나 그대 이토록 아프게 놓아 보다 큰 자유를 불러 보거늘
거부할 길 없는 너는, 어이하여 또 다시 희디흰 두 손 나를 붙잡아 흔들고야 흔들고야 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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