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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시인 / 가을 끝
자정 넘어 든 잠자리에서 바라보는 창문에 나무 그림자가 서렸다 가을은 너무 깊어 이미 겨울인데 저 나무를 비추고 서 있는 등불은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갑자기 어려 저서 철없이 하는 말을 듣고 옆에 누운 사람이 하는 말 그럼 나가서 그 등불이나 껴안아주구려 핀잔을 준다 그래 정말 막막한 이 밤 등불의 친구나 될까보다 괜스레 마음은 길 위에 있다
나해철 시인 / 겨울 버스
코끝이 어는 승강장에 서면 너처럼 오고 또 너처럼 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가족을 모아 고향을 일구고 싶은 아버지의 꿈과 산 바위 위에서나 소리쳐 부르는 스무 살 동생의 터질 듯 한 가슴과 끝끝내 기다림의 불쏘시개만 넣고 마는 새벽마다의 시 뱃속까지 시원하고 다디단 바람의 어느 봄 일렁이며 터져 남이나 북 개울과 마을을 환히 밝힐 그 날의 빛들을 생각한다. 길이 멀고 끝이 없으면 그만큼 더디 오고 기다리는 사람이 몇 안될수록 애터지게 오지 않는 너는 그러나 온다. 황혼 그리고 어둠이 들어 모두들 쓰러져 눕기 전 언제나 눈부신 소리로 먼저 온다. 얼어붙은 손끝과 가슴 하늘과 산 그림자가 깨어나며 달려가 맞이하는 기다림의 끝. 평화와 따뜻한 것. 버스에 오르면 풀밭처럼 잡목림처럼 안기고 섞이어 살의 온기로 데우고 서로 녹여 살붙이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희망은 너처럼 오지 않고 또 너처럼 온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쁨과 눈물겨움 감사와 복된 춤 노래와 빛이 터지는 그날의 이 땅 위에 서듯 흙도 피도 얼어붙는 칼바람 속에서 버스에 오르면 기어코 너처럼 오고야 마는 우리들의 희망에 대해서 생 각한다. 몸은 덥혀지고 누군가를 데우면서.
나해철 시인 / 그건 아야해
풀을 꺾는 내 아이에게 풀은 아프다고 알려줬다. 아이는 꺾인 것을 보면 언제나 아야해 그건 아야해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바보와 같은 이 행성. 이쪽과 저쪽에서 끊임없이 버려지는 귀한 그 누구의 아버지, 누군가의 자식과 아내, 그 행복, 불도저에 밀리는 가족과 족속, 그들의 평화와 기도. 이대로 간다면 사랑과 따뜻함을 다 익히기도 전에 증오와 파괴의 추문은 해일처럼 밀어닥칠 것이고 너는 지극한 슬픔,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부끄러움에 울 것이다. 아이야 너는 오늘도 꽃을 꺾는 한 어른에게 아야해, 그건 아야해 작은 풀밭의 나라를 떠나며 풀꽃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 안녕
나해철 시인 / 그리운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걸. 오랜 시간이 흘러가 버렸어도 그리움은 가슴 깊이 박혀 금강석이 되었다고 말할 걸. 이토록 외롭고 덧없이 홀로 선 벼랑 위에서 흔들릴 줄 알았더라면 세상의 덤불가시에 살갗을 찔리면서라도 내 잊지 못한다는 한 마디 들려줄 걸. 혹여, 되돌아오는 등뒤로 차고 스산한 바람이 떠밀고 가슴을 후비었을지라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랑이 꽃같이 남아 있다고 고백할 걸... 그리운 사람에게.
나해철 시인 / 까치
감나무 가지 위의 까치 세 마리 어둠의 빗장을 끄르고 있네
돌쩌귀 미끌리며 문 열리는 소리
살아 있으므로 느끼는 것은 오직 한가지 문 밖에 황홀히 빛나는 자유
반가워 나아가니 문 밖은 아직 어둡고 까치들만 앞서 날아가 또 다른 문을 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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