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홍수희 시인 / 행복한 결핍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6.

홍수희 시인 / 행복한 결핍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하나 내게 있으니

때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습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니

아직도 내게는

촛불 켜는 밤들이 남아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한

난초가 곁에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내 안에 찾지 못한 길이 있으니

인생은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기 때문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내 안에 무엇이 또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홍수희 시인 / 호수

 

 

먼 길이었네

네게 가는 길

너를 찾아

길을 나설 때마다

 

늘 낯선 그 길이어서

가는 길

고달프고 외로웠지만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그리움도 내게는

병인 까닭에

 

열 펄펄 끓는 이마로

너를 찾았네

찾으면

네가 거기 있었네

 

내 눈 속을

네가 들여다보네

네 눈 속을

내가 들여다보네

 

거기에서

죽지 않는 사랑을 보네

먼 길이었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홍수희 시인 / 희망과 절망사이

 

 

살다보면 그런 날 있지 않겠나

 

다시는 희망이라는 달콤한 입발림에

속고 싶지 않은 날

제딴에는 철저히 속았다 싶어

절망이여 너와 벗하여

휘청이고 싶은 날

찌그러진 깡통처럼 온전히 으깨지고

망가지고 싶은 날

그런 때 뒤를 돌아보게나

희망조차 나에게는 절망이었다는

야릇한 그거,

희망이라 이름 붙인 그것이 바로 안으로는

절망이었다는 아! 아!

아릿한 그거,

이제 이름을 바꿔보게나

나에게는 절망이 이제 희망이라네

희망이 바로 다정한 절망이라네

 

 


 

 

홍수희 시인 / 희망하는 기쁨

 

 

침묵하는

겨울 산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차디찬

바다 위에

새 해가 떠오르는 건

 

하필이면

더 이상은 꽃이 피지 않을 때

흰 눈 나풀거리는 동토凍土에

 

이글이글

새 해가 떠오르는 건

 

가장 어두운 좌절 깊숙이

희망을 심으라는 것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숨어있는 평화를 찾으라는 것

 

희망하는 기쁨,

새해 첫날이 주는 선물입니다

 

 


 

홍수희 시인

1995년 문예지 <한국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이육사문학상 본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 부산가톨릭 문인협회, 부산 문인협회, 부산 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시집으로 [달력 속의 노을](1997,  도서출판 빛남)과 [아직 슬픈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2003, 도서출판 띠앗), [이 그리움을 그대에게 보낸다](2007, 도서출판 한솜),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2019, 도서출판 해드림)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