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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두안 시인 / 마지막 동작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4.

김두안 시인 / 마지막 동작

 

 

  그가 발을 모은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의자와 탁자 위를 뛰어오른다 그는 팔을 벌리고 얇고 냉정하게 웃는다 몸을 회전한 뒤 안정된 착지 동작을 펼쳐 보인다 허공과 바닥은 반복이다 그가 높이 뛰어오를수록 그림자는 악착 같이 바닥에 집착한다 어께에 돋아난 난 상처가 깃털이 될 수는 없다 병 조각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다시 의자와 탁자 위를 뛰어오른다 그는 눈을 감고 옥상 나간 위에 서 있다 그는 귓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름이 가볍다고 한다 오른 팔에서 꽃이 피어나고 왼팔에서 그녀가 걸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빛의 숲을 지나 도시 여름을 건너가야 한다고 한다 새들은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바닥은 결코 허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숨을 쉬고 참는다 바람이 가늘게 손목을 휘감는다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점령해 온다 바람이 싸늘히 뿌리 내린다 그의 내부는 푸른 뼈로 가득 찬다 그는 난간을 힘껏 뛰어오른다 허공의 이름은 정말 가볍다 바닥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바닥을 통과한 후 순간 고요가 열렸다 닫힌다 예수가 사랑한 아이들 돌아오고 있다 층층이 창문에서 여자 목소리가 깨진다 주인집 거북 노인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림자가 없다 그의 마지막 동작은 추락이 아닌 연습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검은 피가 새어나온다 날카로운 교회 탑이 흥건히 비친다 세상이 십자가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이제 바닥이 허공을 허락할 차례다 옥상 난간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8월호 발표

 

 


 

김두안(金斗安) 시인

1965년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임자중- 목포 영흥고 졸업.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거미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아가미』 (민음사, 2009)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