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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 시인 / 물먹는 하마
어서, 하마를 치워야 할텐데 저 하마를 밖으로 끌어내야 할텐데
늦장마 끝나고 서늘한 바람 분다 커튼을 갈아끼우다 문득 떠올린 하마 사냥
장롱 속, 창문도 없는 독방에 켜켜로 쌓아놓은 이부자리, 베개들 햇살 대신 물먹는 하마 한마리 들여놓고 짐짓, 눈 감아버렸다 하루에 두어 번, 하마의 안부를 확인할 뿐 여름 늦장마 견디고 있었다
누군가의 속을 열어보면 저럴까 보이지 않게 젖어 있던 속내 눈물로 차올라 있구나 소리없이 일가를 이루던 곰팡이 지독한 슬픔의 감옥이었구나
제 몸 안에 늪을 가두고 물소리를 듣고 있던 하마 그래도.. 웃고 있구나
그래도 웃고 있구나. 그래도
강문숙 시인 / 별이 되었으면
난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너무 화려한 불빛을 지나서 너무 근엄한 얼굴을 지나서 빛나는 어둠이 배경인 네 속에 반듯하게 박혔으면 해.
텅 빈 네 휘파람 소리 푸른 저녁을 감싸는 노래. 그러나 가끔씩은 울고 싶은 네 마음이었으면 해.
그리운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자주 설움 타는 네 잠 속 너무 눈부시게는 말고 너무 꽉 차게도 말고
네 죽을 때에야 가만히 눈감는 별이 되었으면 해.
강문숙 시인 / 이슬 꽃 피는 아침
이슬로 맺히는 인연의 말 뜨거운 가슴속에 묻어 놓고 여윈 햇살의 마음 기도로 배를 채우며 빛살은 빛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아프게 가는 세월의 눈빛에 인연의 흔적 곱게 실어 올리며 허공에 찍힌 무상한 사랑의 발자국 겨울나무의 수액으로 거르고 걸러 신음 소리 한 쪽 들리지 않은 노랫말 환생하는 꿈 하나 까치 소리 몰고 온다.
강문숙 시인 / 자루 속에서
자루의 주둥이가 풀리면서 묵은 완두콩이 쏟아졌다. 쪼그라든 껍질, 낱알마다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채 견딜 수 없이 가벼워진 목숨.
아직도 구멍 속에 코를 박고 있는 바구미들.
수많은 낮 밤을 완두콩과, 완두콩을 갉아먹는 벌레들로, 자루의 속은 얼마나 들썩거렸을까.
푸른 떡잎과 싱싱한 넝쿨손을 갉아 먹히면서 완두콩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벌레를 껴안고 사방으로 굴러가는 완두콩 자루가 해탈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무한천공을 떠다니는 지구 덩어리 거대한 자루 속, 함께 들썩거리며 나도 쉬지 않고 세상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완두콩과 벌레와 자루가 서로 껴안고 구를 때 삶은 굴렁쇠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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