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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식 시인 / 쥐돌고래에 대한 예의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9.

김영식 시인 / 쥐돌고래에 대한 예의

 

 

  내 호주머니 속에 쥐돌고래 한 마리 살고 있다  

  낡은 잠수함 같은,

  아침마다 굽은 등뼈를 펴고 녹슨 지느러밀 닦아줄 때마다   

  푸웃푸웃 흰 콧김을 내 뿜으며

  고장 난 분수 하나를 끄집어내는 고래  

  먹일 찾아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스프링복처럼

  놈은 언제나 헤진 주머니 밖을 회유하지만

  기껏 구름의 뒤통수나 좇는 게 일쑤  

  부리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이빨고래아목의 포유류는

  사랑을 고백하는 한 송이 꽃도 되지 못하고

  제 등을 갈라 사막의 내게 물 한 모금 축여주지 못한다

  순한 들쥐의 주둥이를 유전遺傳한 잿빛 몽유는 그러므로

  무지개가 아니다 불멸은 더욱 아니다 수평선을 꿈꾸지만

  단 한 번도 심해에 닿아본 적 없는,

  쓸쓸한 은유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오늘도 나는

  오거리에서 육거리로

  시장에서 역전으로 풍랑주의보처럼 떠돌았다

  장미는 보도블럭 위에서

  색색의 풍선을 들고 가던 아이들은 뒷골목에서 일찍 시들어버린 지 오래   

  누군가는 아파트 아래로 투신하고

  또 누군가는 신용불량의 내일을 하수구에 폐기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저녁은 언제나 죽은 물고기Ep처럼 떠밀려오지 지금은

  눈 먼 새들이 제 허기를 쪼아 먹는 흉어기  

  오늘도 호주머니 속에 놈을 쑤셔 박고 귀가한다 가끔씩

  투덜거리는 입속에

  썩은 청어 몇 마리 공갈처럼 던져주면서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김영식 시인

1960년 포항에서 출생. 2007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7년 《현대시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