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식 시인 / 쥐돌고래에 대한 예의
내 호주머니 속에 쥐돌고래 한 마리 살고 있다 낡은 잠수함 같은, 아침마다 굽은 등뼈를 펴고 녹슨 지느러밀 닦아줄 때마다 푸웃푸웃 흰 콧김을 내 뿜으며 고장 난 분수 하나를 끄집어내는 고래 먹일 찾아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스프링복처럼 놈은 언제나 헤진 주머니 밖을 회유하지만 기껏 구름의 뒤통수나 좇는 게 일쑤 부리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이빨고래아목의 포유류는 사랑을 고백하는 한 송이 꽃도 되지 못하고 제 등을 갈라 사막의 내게 물 한 모금 축여주지 못한다 순한 들쥐의 주둥이를 유전遺傳한 잿빛 몽유는 그러므로 무지개가 아니다 불멸은 더욱 아니다 수평선을 꿈꾸지만 단 한 번도 심해에 닿아본 적 없는, 쓸쓸한 은유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오늘도 나는 오거리에서 육거리로 시장에서 역전으로 풍랑주의보처럼 떠돌았다 장미는 보도블럭 위에서 색색의 풍선을 들고 가던 아이들은 뒷골목에서 일찍 시들어버린 지 오래 누군가는 아파트 아래로 투신하고 또 누군가는 신용불량의 내일을 하수구에 폐기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저녁은 언제나 죽은 물고기Ep처럼 떠밀려오지 지금은 눈 먼 새들이 제 허기를 쪼아 먹는 흉어기 오늘도 호주머니 속에 놈을 쑤셔 박고 귀가한다 가끔씩 투덜거리는 입속에 썩은 청어 몇 마리 공갈처럼 던져주면서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홍수희 시인 / 봄은 온다 외 4편 (0) | 2020.06.20 |
|---|---|
| 홍해리 시인 / 토란잎에 이슬방울 외 9편 (0) | 2020.06.20 |
| 심은섭 시인 / Good Bye, L (0) | 2020.06.19 |
| 김산옥 시인 / 천변에 버려진 노을 (0) | 2020.06.19 |
| 박정원 시인 / 뒤꿈치에 대하여 (0) | 2020.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