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석진 시인 / 지하철
잿빛 교도소 하루에도 수만 번 견고한 쇠문이 열리고 닫힌다
들어갈 땐 낯선 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스스로 장막을 친다
갇힌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듯 무장해제되어 손잡이에 매달렸다
쏟아지는 사람들 악어 입 오물 토해 위선의 탈을 벗기어 세상 밖으로 내몬다
남겨진 자에게 던져진 수의(囚衣) 무감각한 회개 전원 사면 복권이다
반복되는 구속과 석방의 악순환
공석진 시인 / 천국으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기차 예매가 시작되었다네 인터넷 구입이 마감되고 암표마저 동이나 다른 교통편 알아보느라 세상은 난리북새통이네
아무리 천국이라 해도 급행으로 갈 일 무에 있나 이 몸은 추억 가득 든 배낭 들쳐 메고 운동 삼아 걸어서 하늘까지 자늑하게 가려네
비록 지연되어 마중 나온 사람 지쳐 널브러지고 하늘나라 신천지 등기부 내 땅 확보 무산되어도 무심하게 가려네
천국으로 가는 동안 꽃잎 사복사복 밟히는 쌔뜩한 무지개 길 따라 미리내 곳곳 여행하며 길 걷다 손 흔들어 구름사다리 얻어 타려네
천국으로 가는 길 사랑하는 이 동행한다면 멀면 멀수록 늦으면 늦을수록 나는 그저 행복할 뿐이네
공석진 시인 / 코스모스
겨울 발목까지 잘리운 그리움은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꽃잎 떨구려 마라 님 오실 그 날 흙먼지 뒤집어 쓴 미소로 맞을지라도
평생 한곳에서 님을 기다려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겠다
공석진 시인 / 화살처럼 살아야 한다
화살처럼 살아야 한다 멀리 보내기 위하여 가능한 뒤로 당겨야 하고 스스로 낮춰야 하고 결국은 놓아야 하거늘
앞으로 앞으로만 위로 위로만 손에 쥐려고 애쓰는 건 늦겨울 앙상한 고목처럼 참으로 볼품없는 것
버리기도 비우기도 연습 없이는 안 되는 일 습관처럼 모두 내려놓아야 갱생하는 길
화살처럼 살아야 한다 느리지만 빠른 듯 빠르지만 느린 듯 아프지 않게 자유로울 수 있게
공석진 시인 / 흐린 날이 난 좋다
흐린 날이 난 좋다
옛 사랑이 생각나서 좋고 외로움이 위로 받아서 좋고 목마른 세상 폭우의 반전을 기다리는 바람이 난 좋다
분위기에 취해서 좋고 눈이 부시지 않아서 좋고 가뜩이나 메마른 세상 눅눅한 여유로움이 난 좋다
치열한 세상살이 여유를 갖게 해서 좋고 가난한 자 마음 한 켠 카타르시스가 좋다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외로워하며 누군가에 기대어 쉴 수 있는 빈 공간을 제공해 줘서
흐린 날이 난 좋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지향 시인 / 공간 밖 공간 외 5편 (0) | 2020.06.29 |
|---|---|
| 나해철 시인 / 오래 되었네 외 4편 (0) | 2020.06.29 |
| 강연호 시인 / 울음 외 5편 (0) | 2020.06.29 |
| 최금진 시인 / 서울에서 살아남기 (0) | 2020.06.28 |
| 이순현 시인 / 민들레 약국 (0) | 2020.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