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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시인 / 서울에서 살아남기 - 그림자 개
종종 컴퓨터 화면의 뒤로 들어가 거기 하얀 깔개 위에 누워본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라고 유치원에서 배웠던 노래가 목련꽃처럼 잠시 환하게 밝은 봄날 어머닌 전단지 돌리다가 잠시 전봇대에 붙어서 펄럭이는 김밥을 먹고 있을 테고 여동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구구단을 잘못 외워서 실업고등학교 졸업장을 잘못 거슬러 주고 있겠지
그래픽과 소음과 전류가 폐수처럼 흘러가는 컴퓨터 화면의 전선 속으로 어린 시절에 접어보았던 종이배를 띄운다면 띵동,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줄 알았던 워킹홀리데이 하며 밥을 쫄쫄 굶고 있는 친구놈에게까지 흘러갈까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혹은 더는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종종 컴퓨터 화면 뒤로 돌아가 RGB 케이블을 밤하늘에 연결한다 별들이 무질서하게 떠있는 하늘에서 별자리를 읽을 수 있었던 때가 과연 우리 가족에게도 행복한 시대였을까
사춘기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은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온다 대책없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절망감 그건 외로움이나 배고픔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까 잠이나 퍼자라, 늙어가는 어머니의 질타는 언제나 항상 옳다
화면에서 자꾸 짖어대는 광고성 팝업조차 한두 번 잘 쓰다듬어주면 길이 든다 동생도 잠시 후에 돌아올 테고 야식으로 통닭이나 한 마리 시켜먹으면 어느새 아침이 오는 것이다 먹어야 사는 문제만 빼곤 나는 행복한 강아지다 컴퓨터 화면 뒤로 돌아가면 널찍한 마당이 있고 거기에 깔린 깔개에 누워 나는 밤하늘에 누가 방금 막 올린 UCC를 보면서 깔깔깔 짖어댄다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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