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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잠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8.

안정옥 시인 / 잠

 

 

  찰카닥, 열쇠로 잠그는 소릴 듣고 집을 나선다 돌아올 때까지 열쇠의 몸에 가둔다는 , 잠이 정지된 것처럼 문을 잠근 집안도 정지된 상태다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와선 곧장 들어가기보다 흔들지 않고 조금씩 기척을 냈다 집안곳곳의 슬픔을 치료해주는 주인은 잠의 신 모르페우스다 자주 잠이 깨기도 한다 모두 잠에 빠져 혼자만 눈뜨며 죽어있는 것 같다 누가 다급하게도 부르는데 잠이 깨워지질 않는다 몸 속으로 마음이 들어가려고 버둥거린다 몸이 잡히질 않는다 찰카닥, 잠글 때처럼 일치돼야 하는데 열쇠의 몸에 가두질 못했다 잠시지만 얼마나 먼가 다급하게 불러 몸 속을 나온 마음이 응대하는 사이 몸이 앞으로 몇 발자국 먼저간 것 , 문밖에 세워놓으면 불안하다 집은 살면서 만들어 놓은 또다른 몸이다 안에 다 내장되어있다 노숙자들이 자주 비틀거리는 건 누군가 불러내 몸 속을 나온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잠가주질 않는다

 

  끝내 몸 속을 못 찾아 울부짖다 들어갈 곳이 점점 박명(薄明)하다 멀리 못 가고 제 입김, 벗어 놓은 옷들 포도넝쿨 문양의 밥그릇 가까이 머무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죽음도 이것이다 잠깐의 잠동무  

 

웹진 『시인광장』 2011년 3월호 발표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와 『나는 독을 가졌네』(1995)『웃는 산』(199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