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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호석 시인 / 낙서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8.

허호석 시인 / 낙서

 

 

나의 글은

마음에 끄적여 두었던

낙서로부터 비롯 된다.

무심코 끄적인 낙서

마음의 텃밭에 가꾸는 생각들

찬찬히 들여다보면

쓰고 쓰고 덮어 쓴 세? 글? 자

 

무슨 미련 두고 두고

아무데나 끄적여지는 낙서

바닷가 은모래밭에

새들의 발자국은 나의 낙서가 되고

바람이 왔다간 창가에

후두둑 떨어진 별은 나의 시가 되고

창공을 건너는 구름이나

낙엽의 반짝거림은 나의 꿈이 되고

 

바람도 바다도 지우지 못해

내 낙서 근방에 와서 머뭇거린다.

 

 


 

 

허호석 시인 / 남해(南海)에 띄운 엽서

 

 

못다함을 참아내는 출렁임인가.

유배되어 떠내려간 그리운 섬 하나

어느 해역을 떠도는가.

푸른물결로 내 안에 출렁이다.

파도로 부서지는 사람아

 

수평선 그 허공에 걸린 그리움은

은빛 날개로 너의 해안을 떠돈다.

 

네가 스쳐간 빈 자리에

무슨 말 부어놓고

오는 듯 오는 듯 멀어지는 파도야

 

모래밭에 쓰는 너의 낙서가

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허호석 시인 / 눈꽃

 

 

저 눈밭에

하늘 과수원

눈꽃이 화안하다.

 

밤사이

하늘의

은혜로운 말씀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저 하늘 밭에

은하의 별빛

막 눈을 뜬 햇살이

무너지게 열렸다.

 

아침 종속에서

쏟아지는 해

그 해에서 나오는 아이들이

 

하늘을 가고 있다.

천국을 가고 있다.

 

 


 

 

허호석 시인 / 눈보라

 

 

무수히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하늘 가득 피어나는 촛불의 Ep

깨끗해야 한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순백의 말, 말, 말을 허공에 던지며

들판을 건너오는 함성

하늘의 경이로움이 군무로 펼쳐진다.

 

빈 나뭇가지엔 하얀 솜옷을 입혀주고

벗겨진 산의 어깨나. 들판은 덮고 덮어

맨살의 상처를 치유한다.

 

혼탁은 무리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

오염된 구석구석, 세상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묻어버려야 한다며

몰려오는 눈보라의 아우성

검게 물든 날을 정화하여 눈부신 새날을

열어가고자 하는 외침이니라.

 

 


 

 

허호석 시인 / 마이산 연가

 

 

마이산아 마이산아

하늘에 오르던

그 사연 못 다한

사랑의 전설이 되었다

애절한 염원은

천지탑을 이루고

하늘을 우러르는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여

구구구 산비둘기

구구구 산비둘기

하늘 층계 오른다 아 ~

하늘가는 길이

여기 있는 것을

여기 있는 것을

 

 


 

 

허호석 시인 / 말 걸기

동시

 

 

나무야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네가 받아 주었지

눈도 비도

바람에 날리는 별도 받아내는 나무

날던 새도 솟구친 공도 연도

떨어지는 것들 모두 받아내려고

하늘 향해 항상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나무에게

나는 종이 비행기를 날려 말을 걸었다

 

나무는 말 대신

빨간 엽서와 열매를 던져 주었다.

 

 


 

 

허호석 시인 / 봄날은 간다

 

 

꽃으로 지붕을 만든 벚꽃터널

꽃눈이 날리는 벚꽃 길을 걸어가면

꽃보다 더 활짝 피는 그리움

 

우리 서로 짝이 될까 꽃이 될까

꿈처럼 걷던 옛 이야기 길

그리움은 폴폴 꽃잎으로 흩날리네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밑그림 속에

우리들의 흔적은 그렇게

영혼의 꽃으로 피고 지고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허호석 시인 / 새벽 비

 

 

비가 오는가

어렴풋 꿈결인양 새벽 빗소리

불빛 새던 창가에

살며시 찾아온 뉘 발소린가

들릴 듯 발소리를 낮추어

내 곁에 나란히 눕는 새벽 빗소리

꿈길로 찾아오는 아련한 사람아

 

나의 빈 뜨락을 적시는 정겨움이여

돌돌돌 어릿한 물소리

꿈의 이랑을 넘치네

흥건히 그리움의 이랑을 넘치네.

 

 

 


 

허호석(許琥錫) 시인

1937년 전북 진안 출생. 서울문리사범대를 졸업. 38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7년 『아동문예』에와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 전북 진안 예총 창립자인 허호석 시인은 진안예총 초대회장(5년) 및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3년)을 역임. 저서로는 동시집 ‘하얀비’, ‘산울림’, ‘바람의 발자국’, ‘불꽃놀이’, ‘풀꽃목걸이’, 시집 ‘햇살의 첫 동네’, ‘청소년 시선집’, ‘산벚꽃’, 기타 ‘이성계’,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이 있다. 국민훈장(석류장) 수훈, 문교부장관상, 한국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전북문화상, 전북문학상, 전북예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국제 Pen 클럽회원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회원, 진안예총 명예회장,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