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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해철 시인 / 비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8.

나해철 시인 / 비

 

 

비오는 날을

젖었다

 

함께라면 기쁨에

따로라면 그리움에

젖었다

 

시간이 흐르고

비 오는 날은 젖었다

 

당신은 뼈아픔에

나는 슬픔에

젖었다

 

당신 얼굴에 흐르는 비로

멀리서도

내 얼굴 젖었다

 

 


 

 

나해철 시인 /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은

젖었다

함께라면 기쁨에

따로라면 그리움에

젖었다

시간이 흐르고

비 오는 날은 젖었다

당신은 뼈아픔에

나는 슬픔에

젖었다

당신 얼굴에 흐르는 비로

멀리서도

내 얼굴 젖었다

 

 


 

 

나해철 시인 /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온 산과 들이 비워진다 해도

여윈 얼굴 마주보며

빛나게 웃어라

두 그루 키 큰 나무의

하늘쪽 끝머리마다

벌써 포근한 봄빛은 내려앉고

바위 그늘 속 어깨 기댄 들꽃의

땅 깊은 무릎 아래서

벌써 따뜻한 물은 흘러라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세월은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벌써 봄 향기 속에 있으니

여윈 얼굴로도 바라보며

빛나게 웃어라

 

 


 

 

나해철 시인 / 세탁기

 

 

한 세상 잘 놀다 간다는 말은

나, 게으르게 살았다는 말

나, 죄가 크다는 말

나, 한 세상 잘 놀고 있다

양심은 팬티와 같은 것

가끔 벗어서 세탁기에 빤다

말려서 다시 입는다

 

한 세상 슬픔을 잊고 웃다 간다는 말은

나, 독하게 살았다는 말

나, 한을 주었다는 말

나, 한 세상 늘 웃고 있다

의무는 런닝셔츠와 같은 것

 

나의 세탁기에서는

땟물과 함께

눈자위 붉은 그리움이

배수구를 통해 흘러나간다

 

 


 

 

나해철 시인 / 쓸쓸한 그것

 

 

나뭇잎을 물들이다 떨어지게 하는 것

세월을 밀어 한 시대를 저물게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로 밀려와

저만큼 조용히 있다

 

시집도 편지도 태워서 재가 되게 하는 것

살도 뼈도 누우면 흙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로 밀려와

저만큼 조용히 있다.

 

 


 

나해철 시인

1956년 전남 나주 영산포 출생. 전남대 의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 의학박사.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되어 등단. 1984년 첫시집 『무등에 올라』 간행 이후,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등이 있음. 현재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중. 현재 나해철성형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