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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순현 시인 / 민들레 약국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8.

이순현 시인 / 민들레 약국

 

 

  1

  민들레약국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비춰본다

 

  여러 장의 유리가

  보호하고 있는 네모난 허공 하나

 

  민들레는 피가 하얗다

  핏빛 가운을 입은 주인은

  허공 어디에 머물러도 잘 보인다

 

  식물과 인간을 묶어두기에

  흰 빛만으로는 부적절하다

 

  2

  민들레 앞에서는

  의심 없이 나비가 된다

 

  심층까지 휘발성인 나비

 

  기웃거리는 마음은 날개를 폈다 접었다

  유리에 얼비치는

  그림자를 뚫지 못하고

 

  늘 혼자인 주인이

  허옇게 뚱뚱하게 불어난다

  거울 밑바닥에 퇴적된다

 

  3

  장마철에는 민들레도 흰 빛도

  녹슨 셔터도 웃자란다

 

  깃털 씨앗을 다 날려 보낸 민들레 대궁처럼

  다 날려 보낸 그도 민머리이다

 

  흰옷이 웃자라서

  발끝에서 머리까지 밀봉해버렸는지

 

  장마가 물러갈 즈음

  그가 보이지 않는다

 

  4

  무심코 써본

  ‘민들레약국’

 

  보이지 않던

  수평선 너머에서 바지선을 끌고 오듯

  약국 민들레의 현실을 예인해온다

 

  파도 잠잠한 백지 위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그것을

 

웹진 『시인광장』 2011년 3월호 발표

 

 


 

이순현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1996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내 몸이 유적이다』(문학동네, 2002)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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