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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시인 / 나무숲에서
나무는 언제라도 무리져 직립한 채 있다. 베인 가슴으로 이 시대 영혼이 이렇듯 숲에 들면 그 자리 그대로 곧추선 나무들 때문에 우리는 다시 고귀한 무엇이 된다. 살 속에 흐르는 가락은 절로 넘치는데 거리와 작은 방 광장에서 그립고 눈물겨운 것들을 위하여 노래하지 못하고 달팽이처럼 살기로 하거나 밤 깊도록 불밝히고 섰자면 바보와 천한 것들로 쓰러져 이 끝과 저 끝에서 씻기우거나 아파하다가 산에 들면 다시 지상의 고운 한 생명으로 구부러진 영혼의 곱추를 세운다. 이 흙 위에 새와 꽃바람 사람과 사람이 깨끗이 어울려 살날이 오리라 기다림과 바램으로 자주 울고 무너지는 사람들. 그늘과 양지의 나무들 숲의 꿈을 꾸면 무성하여 숲이 되고 밀림은 밀림이 되고 산맥이 되리라 기원하면 곧추서서 그리 되는 희망의 땅과 숲에 들자 새벽바람의 숨쉼으로 맑은 하늘의 이마로 푸르름으로 다시 서자.
나해철 시인 / 남몰래 흘리는 눈물
꽃 그늘 졌다 지금 꽃 그늘 아래서 어룽어룽 그늘진 꽃 무데기를 본다 송이마다 꽃들은 조금씩 다르게 어딘가를 바라보며 무한히 고요히 햇빛 밖에 그늘 밖에 있다 누가 소리하나 남몰래 남몰래라고 목이 타서 꽃들은 세상 너머나 바라보는 듯 그날밖에 햇빛 밖에 가만히 있는데
나해철 시인 / 내 마음의 가을
붉은 단풍잎처럼 얇아서 디뎌 밟으면 바스러질 무엇이 거기 있다 그때쯤이면 꼭 무엇이던가 디뎌 밟으며 떠나는 것이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을 견디어낸다는 것일까 견디어낼수록 그렇게 되어가는 것일까 요즈음 몇 일에 십 년이 늙었다 고개를 숙이면 단풍 든 이파리가 아주 말라서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해철 시인 / 내 마음의 겨울
입김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 사라진다 건너가보지 못하고 소멸이다 그와 같다 내 마음
나해철 시인 / 내 마음의 첼로
텅 빈 것만이 아름답게 울린다 내 마음은 첼로 다 비워져 소슬한 바람에도 운다 누군가 아름다운 노래라고도 하겠지만 첼로는 흐느낀다 막막한 허공에 걸린 몇 줄기 별빛같이 못 잊을 기억 몇 개 가는 현이 되어 텅 빈 것을 오래도록 흔들며 운다 다 비워져 내 마음은 첼로 소슬한 바람에도 온몸을 흔들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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