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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해철 시인 / 넥타이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6.

나해철 시인 / 넥타이

 

 

그렇게 말고 이렇게

매듭을 묶을 수도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니

그 후로 그렇게 말고

이렇게도 인생을

묶으며 살아왔다

아니 늘 이렇게만

살았다

이렇게 묶을 때마다

네가 준 내 인생 때문에

사무쳐 목이 메인다

 

 


 

 

나해철 시인 / 눈

 

 

눈이 허리까지 내려 쌓인 날

태어났다 했었지

골짜기 깊은 곳에서

붉은 동백처럼 피어났겠구나

그래 네 사랑은

눈에 갇힌 동백과 같았다

붉어서 아프고

흰 눈 속이어서 아팠다

하얗게 바랜

내 가슴의 흰 눈밭에

너는 붉게 피어서

동백같이 아팠다

 

 


 

 

나해철 시인 / 달

 

 

너를 만나려면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달아 너의 몸 아래 내 몸 눕히려면

어두워야만 한다

황홀한 네 빛이

내 영혼에 가득하기까지는 밤이 와야 한다

햇빛에서는 아름다운 네 모습 볼 수 없어

그러므로 밤뿐인 사랑

어둠뿐인 사랑이다

달아 이지러져서 내 심장 멎게 하다가

터질 듯 차올라 내 가슴

달뜨게 하는 달아

너를 만나려면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밤뿐인 사랑

어둠뿐인 사랑이다

 

 


 

 

나해철 시인 / 담쟁이

 

 

살았을 뿐이다

살아내야 할 시간을

견디며

빈자리에

푸른 잎을 토해냈을 뿐이다

다만

절체절명

사는 일을 위하여

살아냈을 뿐이다

오늘 너는

흰 절벽을 푸르게 덮었다고 하는구나!

시간들이

직벽으로 서 있었는가?

절벽에서 살아왔는가?

절체절명

이 시간

살이 터지며 또 푸른 것

하나 토하자꾸나

 

 


 

 

나해철 시인 / 독한

 

 

독한 것아

이 독한 것아

눈물이 없는 것아

울 줄을 모르는 것아

 

인간의 자리가 아니라

벼슬자리에 앉아 있는 것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제 편만을 위하는 것아

 

봄은 없고

겨울만 있는 것아

땅 위에 풀 나무는 없고

쇠붙이만 있는 것아

 

물길 마른 대지에

메마른 가뭄뿐인 것아

 

생명 무시, 독선, 냉혹,

편가름, 거짓 적 만들기, 허위,

공수표로 말만 하고 나 몰라라 하기,

남 모멸하기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공허한 것아

 

비애와 사무침이 긋지 못하고

하염없이 메아리쳐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고장난 것아

 

('독한 - 세월호 규명시 287' 전문)

 

 


 

나해철 시인

1956년 전남 나주 영산포 출생. 전남대 의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 의학박사.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되어 등단. 1984년 첫시집 『무등에 올라』 간행 이후,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등이 있음. 현재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중. 현재 나해철성형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