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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희업 시인 / 흙 2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0.

김희업 시인 / 흙 2

 

 

  주말이 아니라면, 주말농장은

  연고자 없는 묘같이

  무책임하고 쓸쓸해 보일 테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평일에는, 열쇠를 아예 나비에게 맡겨 버린다

  그러고 보니 주말에만 와야 주말농장인가

  흙으로 귀의하고 싶은 주말의 사람들

  갓 땅에 묻힌 묘비처럼

  장엄한 번호들

  4평도 못 되는 땅뙈기를 지키며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서로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어 놓았다

 

  그 날 암자에서 보았다

  볼트를 바위에 박은 산악인과 달리

  장비 하나 없이 절벽을 오른 야생의 민들레를

  애써 사람 손으로 가꾸지 않아도

  저 혼자 훌쩍 커 버린 민들레의 자수성가

 

  헬리콥터가 나비의 얕은 잠을 방해하며

  소음을 파종해 놓고 사라졌다

  낮술 취한 여자가 땅을 짚고 일어서

  양손의 흙을 더럽다며

  손바닥 바스러지도록 털어댔다

  여자는 돌아가서 그 손으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먹을 것인데

  쌀이 되기까지 전전긍긍했을 흙의 모성을 떠올리면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김희업 시인

서울에서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칼 회고전』(천년의시작, 2009)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