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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혜 시인 / 가위 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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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잠 깊어지면 옆에 있던 벽 어느새 사라지고 내 이부자리는 14층 까마득한 유리절벽 위 이불도 없이 더블침대 끝으로 밀려나 한 다리, 덜컥 떨어진다 어린 시절 꿈속에서 허공에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이불자락 당겨 나를 구해주곤 하던 엄마는 없고 캄캄한 추락! 깜짝 놀라 잠이 얕아져도 더 이상 정강이는 길어지지 않고 다공의 등뼈만 점점 굽어질 뿐 머리맡에 와있는 새벽의 희뿌연 손톱이 정수리를 할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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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시간은 다 끝나가는데 낯선 방정식이 계속 앞을 가로막는다 나와 당신처럼 X Y 변수는 도무지 풀리지 않고 그 모호한 함수관계도 알아낼 수가 없다 함께 해 온 시간들 아무리 적분 해봐도 값이 구해지지 않는다 카운트다운 초침소리에 숨이 막힌다
드르렁 컥,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가까스로 시험지를 빠져나오니 아직 소파 위, 등짝이 축축하다 평생을 같이해도 풀어낼 수 없을 미지수 Z, 안방에서 코골고 있고 아들 아이 엎드려 잠든 환한 책상 위엔 숫자와 기호들이 뒤엉켜 칼춤을 추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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