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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길나 시인 / 0,01%에 대하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4.

김길나 시인 / 0,01%에 대하여

ㅡ원자 안이 비어 있음에

 

 

텅 빈 들판에 구름이 피어났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추방된 유배지의 꿈은 목이 마르다

탈수된 꿈이 굳어진 돌은 낮 없는 밤

돌이 날았다

​빛으로 빛나는 돌의 날개가 새보다 빨랐다

지구로 유배해 흘러온 유성의 후예라면,

​별이었을 돌의 장구한 흐름이

제 텅 빈 내부를 드러낸 거지

동굴의 절경이 거기 있지

그래도 누가 듣고 있겠다

파괴는 돌의 또 다른 언어라고 돌이 자랑하는 걸

마음에서 마음으로 날아들어 마음의 장식을 깨뜨리고

공허를 일용할 빵처럼 부풀려 놓는 걸

 

우리가 돌 속 허공에 발이 채여 넘어진 날,

​내 안의 99.99%의 공백이 네 안의 공허와 딱 마주쳤다

나는 아픔을 숨겼고 너는 눈물을 감췄다

​0.001%를 비우기 위하여 나는 여기에 당분간

살아 있겠으나 역설이 꽃으로 피어나는 이곳에서

채움의 동력으로 나의 비만은 진행될 터이어서

강제 비움이 단행된 그날에야 남은 자들이

나를 죽었다 하리라

 

계간 『문학청춘』 2019년 가을호 발표

 

 


 

 

김길나 시인 / 바닥에서 만난 새

 

 

허공이 단단해지는 것은 별의 씨앗을 품은 먼지구름이 압착되는 까닭이라고 날아든 참새들이 소리내어 지저귀었다

 

오늘의 모든 바닥이 어제의 허공이었으므로 어제의 날개가 오늘은 바닥으로 내려와 있다고 참새들이 제 모국어로 꿈꾸듯이 노래했다

 

구름이 수시로 피어나는 이 바닥에서 비는 피아노 건반을 밟고 수평으로 튕겨 오르내리는 ‘빗방울’ 이라고 비의 자서전을 펼쳐 빗소리가 빠르게 낭송하고 있었다

 

피아노 선율을 맨발로 타고 노는 참새들이 허공을 접은 날개를 당분간 펼치지 않으리라는 소식을 들었다

 

광시곡 고개 마루에 오른 갈림길에서 너와 나의 눈과 눈으로 폭우가 오고갔다

 

그리고 내 안에 살고 있는 아이가 방석을 들고 밖으로 나와 참새들과 놀고 있었다

 

아이가 참새들을 방석으로 덮을 때 참새들은 방석 귀 밖으로 빠져나오곤 했다 빠져나온 참새들이 더욱 싱싱해져 갔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바닥이라고 고개 숙인 자리에서 뜻밖에도 내가 만난 건 새들이었다

 

계간 『푸른시』 2018년 여름호 발표

 

 


 

김길나 시인

1995년 시집 『새벽날개』로 등단하고 1996년『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빠지지 않는 반지 』, 『둥근 밀떡에서 뜨는 해』, 『홀소리 여행』, 『일탈의 순간』, 『시간의 천국』과 산문집『잃어버린 꽃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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