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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석 시인 / 아침 아이들
거미줄은 아침 이슬 아기바람 새소리까지 모두 걸었습니다
거미는 몇 번이나 하늘을 내다봅니다
처마 끝 새 하늘이 걸렸습니다 부신 해가 철렁 걸렸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지껄임 소리도
아이들은 하늘을 도르르 말아 해를 가져갔습니다
거미는 구멍 난 하늘을 다시 깁고 온 마을은 햇살의 나라가 됩니다
허호석 시인 / 엄마가 기르는 해
엄마의 눈은 사랑의 옹달샘 엄마는 그 옹달샘에 동동동 해를 기른다
엄마의 품안에 단풍잎처럼 사르르 사르르 자고 깨는 해
아직은 날개죽지가 파르스름한 해 어느날 둥지를 떠나 날려보낼 그 파란 하늘을 엄마는 날마다 한 장씩 처마 끝에 내어간다.
허호석 시인 / 여기까지야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끈은 만들 수도 볼 수도 없는 느낌의 끈이다. 우린, 말 대신 그 당김으로 만난 짝이었지만 필연이 될 수 없는 우리는 친구였다.
감을 수 없어 늘일 수밖에 없는 이 질긴 탄력 어려운 말 대신 생각의 얼레를 풀어보고 되감아보아도 사랑에 연습은 없다는 거
타다가 사그라지는 이야긴들 아픔의 깊이만큼 우리 잊지 말아요 가까이도 멀리도 아니게 이대로 멈춰 있기를…….
우리는 여기까지야.
허호석 시인 / 왜 머뭇거리나
머무는 곳마다 물처럼 채우고 비우고 다 주고도 잃은 건 없다
돌아보면 한순간의 바람인 걸 옛 생각의 길섶마다 너의 해안을 떠돌던 빛 바랜 세월의 잎새들이 날린다
사랑할 때 떠나라 했다 내 그림자 하나 강물에 떨어뜨리고 구름이듯 산을 넘으면 그만인 걸 아! 나 여기 왜 머뭇거리나
허호석 시인 / 외딴집
산새 둥지처럼 산기슭에 그림 같이 집 한 채 계곡의; 맑은 물소리보다 더 맑은 집
누가 살고 있을까 꿈을 꾸는 오막살이
집 앞개울에 징검다리 몇 개 놓아두었다 맑은 물소리 나와 놀게
물소리와 햇살이 오순도순 사는 집 물소리가 집 비우면 햇살이 집을 보고 햇살이 집 비우면 물소리가 집을 보고
허호석 시인 / 찔레 꽃
옛 생각 잊을까봐 꽃 피우고 잊으라 꽃 지우는가
꽃은 꽃을 지우면서 아픈 자국을 남기듯 이룰 수 없는 연정은 아름다운 상처를 남긴다 청 보리밭 언덕길에 새겨진 동화가 사랑의 밑그림이 될 줄이야…. 만남은 헤어짐이 예약되어 있었던 것 멀리 보이는 게 아름답듯이 멀리 있는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것 언제까지 피고 질 사람아 제목 없는 이야기를 나눠 가진 우리는 누구였나
꽃은 져도 봄은 지지 않는 것을
허호석 시인 / 항아리
척박한 우리 삶을 주물럭거려 질항아리를 빚어낸 흙손이 우리의 참 손이었다
그 투박한 흙손으로 민족의 혈맥을 짚어내고 우리 삶의 미열까지도 짚어내었다
불가마 속에서 영혼의 혼불에 再生의 몸을 사룬 항아리 먼 기억의 토담가 조선의 달도 풀벌레 소리도 찰랑찰랑 띄우더라
햇살도 세월도 익어 가는 장독대 처마 끝에 걸어놓은 저 하늘도 달빛도 삭히더라, 우리의 가슴 가슴도 삭히더라
돌담 가 장독대에 엎드린 여인의 등뒤로 내리는 하늘이여, 눈발이여 그 아늑한 정경을 품더라 하늘을 품더라
허호석 시인 / 풀꽃 동시 ∼ 호호석
이름 알아주지 않아도 여기 피어 있습니다
스치며 눈길 주지 않아도 여기 피어 있습니다
풀숲에 묻혀 보이지 않아도 여기 피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꽃인 걸 하늘을 열어 놓고 여기 피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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