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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차주일 시인 /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7.

 

차주일 시인 /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어 품의 높이를 구하기 때문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을

사람의 약력으로 출토해도 되나?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

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이 허리 굽은 사내는 나의 첫 삼각형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삼각형 공식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까칠까칠한 수많은 꼭짓점을 별자리로 생각하게 한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고

내 이름자를 새 별자리 그리듯 처음 쓰게 한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한 사내의 악력은, 왜 지금껏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하는가

늙은 삼각형이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댄다

내 팔꿈치가 농사꾼의 허리 각도를 이해할 때

내 몸 통각점들이 지워진 선분을 다시 긋는다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사내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힐 때

연필심에 묻혔던 침만큼의 땀이 손바닥에 어린다

내 눈은 왜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이해하는가

젖은 눈은 왜 나를 타인 되게 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눈으로

그의 얼굴과 손과 발 세 변의 길이를 잰다

내가 누군가의 눈을 껌벅이며 곤혹스러워할 때

삼각형의 높이를 잴 눈물이 제자리에서 마른다

내가 이 점點에 염기를 경작하여

누군가의 발까지 이르는 높이 하나 짠내 나게 그으면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가 된다

 

 


 

 

차주일 시인 / 뿔

 

 

순록들이 머릴 치받으며 싸움박질하는 동안

뿔에는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거리가 각인된다고 한다.

 

최후의 승자가 된 수컷이 일출봉에 서면

여명에 들판으로 길어나는 뿔그림자는 지도가 된다고 한다.

 

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로저으며

메아리가 음각된 들판 곳곳에 뿔그림자를 문지른다고 한다.

 

뿔그림자가 닳아 뿔이 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짧아지면

무리를 이끌고 노정을 나선다고 한다.

 

새 뿔처럼 뻗어난 샛길 어귀에 중톳을 분가시키며

산통이 메아리가 된 곳을 향해 앞장선다고 한다.

 

노정은 풀내물과 물내풀이 맞서 싸우는 성지에서 멈춘다고 한다.

 

암컷들은 메아리가 회귀한 땅에다 새끼를 낳고

귀로에 대해 함구하지만,

 

땅에 부딪힌 메아리가 방향을 틀듯

땅을 디딘 무릎으로 일어선 새끼는

새벽이 돋는 봉우리로 끝내 찾아와 첫 되새김질을 한다고 한다.

 

새끼가 이빨 부딪는 소리로 물과 풀의 주기를 외우기 시작하면

메아리의 지름을 가늠할 수 있는 뿔이 돋아난다고 한다.

 

 


 

차주일 시인

1961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학.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천년의시작, 2010),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가 있음. 계간 《포지션》 편집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