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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김포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미나 시인 / 꽃은 뱀을 몰고 온다
꽃은 뱀을 몰고 온다고 하였다 그때 나무는 아득히 묻힌 땅 속의 긴 폭풍을 가지고 왔다 소용돌이치면서 피어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살문에 비치는 햇볕
흙 속에 허물을 길게 벗어두고 튀어 오르는 뱀을, 우리는 구불거리는 나무라고 불렀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무는 두근거리는 비을을 안은 채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 그때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툭 불거진 뱀을 보고 그만 발자국은 꽃잎을 밟고 혼비백산, 산안개 자욱했던 봄도 발이 달려 있는지 발톱만큼, 개미걸음만큼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꽃을 먹는 것들이 사는 마을 지붕 너머 쓰러진 사람들 두고 불쑥 떠오른 구름인 줄 알고 딴청 피우듯이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
2015년 (제21회) 진주가을문예[우수상] 김미나 시인 /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웅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솜 트는 기계 멈춰있는 집 앞의 목련나무 꽃송이 안으로부터 달이 솜털을 짜기 시작했나봐요 자동차 바퀴에 찍힌 고양이 울음소리도 되살아나요 솜이불을 짜는 소리 할머니의 귓바퀴에 감겨요
나는 벼락처럼 자라난 목련나무의 꽃과 달의 이빨들이 하나의 틀을 이루는 소리를 생각했어요
먹구름을 집어 삼킨 듯 검게 물드는 것들은 솜틀집 앞 배수구에 걸려있나봐요 그늘 쪽에 얼어있는 지난 봄눈 덩어리들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려요 아직 꽃샘추위는 발끝을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었죠
그러니까 목련들도 밤의 이불을 덮고 싶어 나뭇가지 침대에 꼭 맞는 그믐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
봄눈 녹자 귀신도 볼 수 있다는 물웅덩이엔 달과 목련과 거미가 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고여 있었어요 이불 한 채에 그려진 목련나무, 노란 나비들이 먼저 날아와서 날개를 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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