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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 / 동강, 저 정선 아라리
산을 여는 것은 어디나 초록강입니다. 강원도 정선의 산중을 참 여러 굽이 에돌아 흐르는 동강 물머리를 심호흡으로 깊이 끌어들여 지그시 오래 눈감아보시지요. 사람의 속이 저와 같이 첩첩하여서 그 노래 또한 얼마나 여러 굽이 에돌아 흐르는지요. 강 따라 산 따라 사람살이가 거기 따로 있다 하지요. 정선 아라리, 이 애터지게 느리고 구성진 가락을 동강 물길 위에 놓아 천천히 한번 풀어보시지요. 주물로 부어낸 듯 실로 똑같습니다. 따로 무엇이 그 마음 열겠는지요.
문인수 시인 / 빈 집
罪여 내 시꺼먼 꼬리가 뭉턱, 뭉턱, 물려 잘려 나가는 것 같다
동강의 유장한 물길을 향하는 화자는 벌써 자신의 “罪”의 꼬리가 “뭉턱, 뭉턱” 잘리는 사죄의 전율을 느낀다. 이와 같이 자신의 몸에 협착되어 있는 죄로부터의 해방감이 그의 발길을 거듭 정선선 객차로 오르게 하는 추동력이며 더 나아가서는 “섬진강/유등연지/조양강/욕지도/우포늪”등지로 (주로 물의 이미지와 관련된 곳이 많다) 향하게 하는 추동력이다.
그렇다면, 문인수 시인의 거미줄 같은 여로의 풍경을 낳는 원형인 “罪” 혹은 옹이처럼 뭉쳐진 삶의 응혈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다음 시편의 “빈집”에는 시인의 “동강의 높은 새”처럼 잠시도 정박하지 않고 떠돌아다닌 비밀이 잠복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 삽짝 덜 닫고 나간 과거여. 그 길 뱀 꼬리 스미듯 사라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그리하여 억새꽃 무리 지어 허이옇게 마구 쳐들어오듯이 뒤덮여다오 마음속 어디 이 한 채 어둑어둑 등을 다는 폐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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