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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고방 시인 / 천진함이여 말하라 인당수에고함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6.

윤고방 시인 / 천진함이여 말하라 인당수에고함

 

 

난데없는 꿈속이로구나

인당수 아련한 꿈속이렸더니

물결 사나운 바위섬 아래

웬일이냐 차가운 암흑 속로구나

꿈이란 원래 아름답고 따스하련마는

눈먼 아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뜨거우련마는

비원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이더냐

차라리 너의 꽃피우지 못한 처녀 가슴 속

차갑더라도 심청이가 품어 주는

아름다운 꿈속이기를....

 

거친 바람 차가운 물결에 훱싸인 채

온 세상 바다 억만 쇳덩이에 눌려

그대들을 덮고 있는 무량한 어둠의 무게가

수 천만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잇는

멀건 대낮이,

가위 눌려 숨 막히는 칠흑 밤중이

벌써 며칠이더냐

당신들과 우리들이 품고 사는

꿈이 다르지 않으니

이리도 차갑고 무거운 악몽 속으로

우리가 함께 던져졌구나

 

 


 

 

윤고방 시인 / 유년의 바람꽃 · 1

 

 

아비는 대륙의 미친 회오리였다.

열대성 난기류를 덮쳐서

불면의 황톳벌에 내지른

아수라의 바람꽃이었다

1950625-1953717

바람아, 너의 등번호는

우리들 이마에 찍힌 수인번호.

천 년 이무기 우는 여름밤.

쇳물 녹아 흐르는 산하에

달맞이꽃은 무더기로 피고 지는데

대낮에도 혓바닥 붉은 달이 떠서

피로 얼굴을 씻고 있었다.

 

 


 

 

윤고방 시인 / 도방에서

 

 

목말라 깊은 밤

당신의 어둠을 데불고 이리 오시오

가마 속에 눈을 꼭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막걸리 한 사발에

북어 한 바리 받쳐 놓고

사물 한바탕 신명나게 울린 다음

불을 지핍시다

눈부시게 빛나는

고뇌의 도가니 속에서

아직 식지 않은 분청 빛

새 하늘이 열릴 때까지

 

 


 

 

윤고방 시인 / 낙타와 모래꽃 · 3

 

 

종일토록 모래바람 속을 걷는다

때도 없이 광풍이 일어

붉은 모래산들이 우뚝 일어서더니

한꺼번에 쏟아져 넘어진다

아지랑이 뜨겁게 쌓이는 언덕 위에

마천루로 솟은 소금기둥 하나

청록의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기둥 벽면에 박힌 거울 속에

수염이 허옇게 바랜 낙타 한 마리

지도에도 없는 가시덤불을 헤쳐

푸른 나무 한 가장이 물고 있다

 

모래꽃이 피어있는 곳을 가르쳐다오

신기루 향기는 沙丘에 가득한데

아직도 새로이 뛰기 시작한 맥박을

한 아름 안고 있는 발자국은

묻혀버린 발자국 위에

쌓이고 또 쌓이고

 

 


 

 

윤고방 시인 / 울려오는 소리

 

 

옛날 옛적

파미르고원에서 알타이산맥을 넘어

바이칼호를 건너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리고 달리던 만 년의 바람 속으로

울려오는 소리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오늘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향하여 뻗은

시베리아 횡단 만 리 철길을 따라

들려오는 소리 있습니다.

 

고조선과 고구려와 드넓은 발해 벌판

잃어버린 발자국의 후예들이

차가운 화물열차에 짐짝으로 실려 떠나며

눈물의 아라리 한숨의 쓰라리에

실어 보내던 소리 있습니다.

 

자작나무 숲과 풀꽃들의 배웅 속에

당신들의 피와 살이 흩어진 땅 끝과

우리들이 높이 받드는 하늘 끝이

한데 어우러져 만나는 순간에

깨어나라 외치며 태어나는 섬광 한 줄기

그 빛나는 시발점으로 달려갑니다.

 

여든 해의 어리석음과 뉘우침을 싣고

둔중한 철마의 뼈마디마다 깊이 새겨진

그날의 통한마저 싣고 갑니다.

울리는 소리를 향해 갑니다.

 

너는 누구냐?

너희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우리는 누구냐?

 

 


 

윤고방(尹古方. 시인ㆍ한국화가

1947년 서울출생. 본명 창혁(昌赫).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석사), 1978년 <입동일기>외 1편으로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사,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특별상, 특선 등 초대작가. 한국연그림협회 회장ㆍ창묵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 역임. 현대문학 현대시 신인상(1982), 추사선생추모전국서예 백일장 한글부 툭선(1994), 작품<눈맞이 노래> <정육점이 보이는 길> <겨울 술집에서> <그믐날의 출근> <산마루의 바람> <밤길> 등. 시집 『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 ,『바람 앞에 서라』  『낙타와 모래꽃』.  시도화집(詩陶畵集)<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