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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배 시인 / 수련 피는 아침
물결을 딛고 수면 위로 올라선 수련.
젖꼭지를 문 아기처럼 강물을 움켜쥐고 볼이 미어지도록 해시시 웃는다
굽이굽이 잠긴 산맥의 발목을 씻으며 바다로 가는 강물의 노래는 깊어 가는데
수련 핀 아침 빈 하늘 가득 흰 구름 몰려간다.
구연배 시인 / 아버지 제삿날
하늘 집에서는 필시 생일날일 터 누군가 준비해줬을 잘 차린 아침상 물리시고 타고 갔던 꽃상여 손수 몰고 일 년에 한 번 집에 다녀가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빠와 함께 시골가는 길
생전에 좋아하시던 고사리나물과 쇠고기 두어 근 끊어놓고 입 짧은 시부 저녁진지 준비하느라 애쓰는 두 올케가 고마워 티셔츠 한 벌씩 샀다
곱게 지어 드린 단벌 수의를 입고 후여후여 집으로 걸어오실 아버지 걸음은 정정하신지 뽀얀 얼굴에 막새 삼베옷이 여전히 잘 어울리는지 마음이 먼저 달려가 아랫녘 산모롱이까지 눈마중을 나간다
한 번 절에 십 년 동안 못 찾아뵌 불효를 빌고 두 번 절에 툭! 문을 열어젖히며 앞 산 찔레꽃이 참 예쁘게 피었구나, 말씀하실 것 같아 지지리 복도 없으시다 목이 메어 울먹임인데 아랫목 어머니 제사상으로 목을 길게 빼시고는 아버지 좋아하시던 조기찜을 가리키며 연신 젓가락을 바꿔 올리라신다
생전에는 입에 대지도 못하던 술을 벌써 몇 잔 째 비우신다 형제들 둘러앉아 함께 음복하고 제삿밥을 비비는데 어머니, 아무도 몰래 한 그릇 곱게 퍼담아 고샅으로 나가신다
아버지 혼자 얼마나 쓸쓸하실까 내 얼른 따라가야지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별 걱정 다 하신다며 막내가 화르르 성을 내는데 일 년에 한 번 만나 저만큼이라도 정 나눌 사람 하나 만들어놓은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시냐 못난 딸이 속 꾸지람을 해본다
서둘러 길 떠나는 아버지 산소 뒷산에 소쩍새 피울음이 길게 들려온다.
구연배 시인 / 어리연꽃
사는 일이 먼지바람 같다고 하더니 손 한번 잡은 인연이 무거워 훌쩍 인도(印度)로 간 사람 잘 다녀오란 말도 못하고 어리연꽃 핀 강가에서 허허로이 눈물로 바래느니 꽃잎 몇 장으로 강물을 움켜쥔 저 환한 꽃불 부디 성불(成佛)하시라.
『환한 꽃그늘 』,[건강신문사]에서
구연배 시인 / 엉겅퀴 꽃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긍휼함이니
엉겅퀴 꽃을 보라 한 뿌리에 한 대궁만을 뽑아 올린 붉은 빛 꽃숭어리
그리운 그 날 꽃잎 포개는 날 죽어도 아니 떨어질 가시돌쩌귀를 가슴에 박고 산다
뿌리도 하나 꽃도 하나 상처를 입었다면 용서하시라 오직 그 사랑을 위한 씨방이니.
구연배 시인 / 이브의 맛
길을 걷다 목이 말라 남의 밭 사과를 땄다. 덜 익은 푸른 사과 하얀 속살을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신물이 차올라 목마름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는데 아스슴 눈꺼풀이 감기고 손끝이 짜르르 오그라든다. 어! 할 새도 없이 동시에 불끈 바지를 당기는 힘. 푸른 사과 속의, 신 맛 속의 무엇이 몸의 목마름은 삭히고 정신의 목마름을 주는지 향기로운 모순의 맛에 연신 어린 사과 속살을 깨문다. 아사삭 씹히며 눈뜨는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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