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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연배 시인 / 수련 피는 아침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6.

구연배 시인 / 수련 피는 아침

 

 

물결을 딛고

수면 위로 올라선 수련.

 

젖꼭지를 문 아기처럼

강물을 움켜쥐고

볼이 미어지도록 해시시 웃는다

 

굽이굽이 잠긴

산맥의 발목을 씻으며

바다로 가는

강물의 노래는 깊어 가는데

 

수련 핀 아침

빈 하늘 가득

흰 구름 몰려간다.

 

 


 

 

구연배 시인 / 아버지 제삿날

 

 

하늘 집에서는 필시 생일날일 터

누군가 준비해줬을 잘 차린 아침상 물리시고

타고 갔던 꽃상여 손수 몰고

일 년에 한 번 집에 다녀가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빠와 함께 시골가는 길

 

생전에 좋아하시던 고사리나물과

쇠고기 두어 근 끊어놓고

입 짧은 시부 저녁진지 준비하느라 애쓰는

두 올케가 고마워 티셔츠 한 벌씩 샀다

 

곱게 지어 드린 단벌 수의를 입고

후여후여 집으로 걸어오실 아버지

걸음은 정정하신지

뽀얀 얼굴에 막새 삼베옷이 여전히 잘 어울리는지

마음이 먼저 달려가

아랫녘 산모롱이까지 눈마중을 나간다

 

한 번 절에

십 년 동안 못 찾아뵌 불효를 빌고

두 번 절에

툭! 문을 열어젖히며

앞 산 찔레꽃이 참 예쁘게 피었구나, 말씀하실 것 같아

지지리 복도 없으시다

목이 메어 울먹임인데

아랫목 어머니 제사상으로 목을 길게 빼시고는

아버지 좋아하시던 조기찜을 가리키며

연신 젓가락을 바꿔 올리라신다

 

생전에는 입에 대지도 못하던 술을

벌써 몇 잔 째 비우신다

형제들 둘러앉아 함께 음복하고 제삿밥을 비비는데

어머니, 아무도 몰래

한 그릇 곱게 퍼담아 고샅으로 나가신다

 

아버지 혼자 얼마나 쓸쓸하실까

내 얼른 따라가야지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별 걱정 다 하신다며 막내가 화르르 성을 내는데

일 년에 한 번 만나

저만큼이라도 정 나눌 사람 하나 만들어놓은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시냐

못난 딸이 속 꾸지람을 해본다

 

서둘러 길 떠나는 아버지

산소 뒷산에

소쩍새 피울음이 길게 들려온다.

 

 


 

 

구연배 시인 / 어리연꽃

 

 

사는 일이

먼지바람 같다고 하더니

손 한번 잡은 인연이 무거워 훌쩍

인도(印度)로 간 사람

잘 다녀오란 말도 못하고

어리연꽃 핀 강가에서 허허로이

눈물로 바래느니

꽃잎 몇 장으로 강물을 움켜쥔

저 환한 꽃불

부디 성불(成佛)하시라.

 

『환한 꽃그늘 』,[건강신문사]에서

 

 


 

 

구연배 시인 / 엉겅퀴 꽃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긍휼함이니

 

엉겅퀴 꽃을 보라

한 뿌리에

한 대궁만을 뽑아 올린

붉은 빛 꽃숭어리

 

그리운 그 날

꽃잎 포개는 날

죽어도 아니 떨어질

가시돌쩌귀를 가슴에 박고 산다

 

뿌리도 하나 꽃도 하나

상처를 입었다면 용서하시라

오직 그 사랑을 위한 씨방이니.

 

 


 

 

구연배 시인 / 이브의 맛

 

 

길을 걷다 목이 말라

남의 밭 사과를 땄다.

덜 익은 푸른 사과

하얀 속살을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신물이 차올라

목마름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는데

아스슴 눈꺼풀이 감기고

손끝이 짜르르 오그라든다.

어! 할 새도 없이 동시에

불끈 바지를 당기는 힘.

푸른 사과 속의, 신 맛 속의 무엇이

몸의 목마름은 삭히고

정신의 목마름을 주는지

향기로운 모순의 맛에

연신 어린 사과 속살을 깨문다.

아사삭 씹히며 눈뜨는 이브.

 

 


 

구연배 시인

전북 진안출생 *1995년 전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95년 자유문학 시 추천 완료. <자유문학> 신인상(시) 수상. 시집 <빗방울은 깨져야 바다가 된다> <물의 간극> <몽리몽외(夢里夢外)> <환한 꽃그늘> <사계 그리고 환절기>. 현재 서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