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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선 시인 / 구덕살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

정선 시인 / 구덕살

 

 

  모두가 시인 될 필요는 없지요

  치골 깊숙이 박힌 말

  바람이 꽃봉오리만 살짝 건드려도

  유독 가려운 그곳

  이 봄 감당할 수 없는 치욕들은 어디로 쌓이는가

  겨드랑이에 고인 치욕은

  배꼽을 타고 흘러

  왼쪽 사타구니를 더듬는다

  나도 시인인데

  나도 시인인데

  긁을수록 발갛게 부어오르다

  멍울멍울 구덕살 박이는

  구부정한 봄

  3월 둔덕에 꽃다지 핀다

  참말로 모두가 시인 될 필요는 없었다

  내가 꽃다지 앞에 엎디는 것은

  가녀린 대궁에 귀를 대어 보자는 것이다

  낮게 곱사등이로 흔들리겠다는 몸짓이다

  비로소 나를 놓겠다는 포기각서다

  세상에 못다 한 말은 꽃술로 모인다지

  아름다움도 권태가 깃들어 스러지고

  내 몸 어딘가에 환한 치욕이 꽃핀다

  자발없이 시를 긁적인 죄

  슬픈 호흡의 구덕살꽃

  노랗게 핀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4월호 발표

 

 


 

정선 시인

전남 함평에서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천년의시작, 2010)와 에세이집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