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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서림 시인 / 입구도 모르는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

최서림 시인 / 입구도 모르는

 

 

  커피전문점보다 여전히

  다방이 더 익숙해서 들어가기 편한 동네

  쭈글쭈글한 인생들이 대낮부터

  지하 88다방에 죽치고 앉아

  금붕어처럼 뻐끔뻐끔거리고 있다

  쉽게 열었다 금세 망하는 미장원들만 있고

  기껏해야 하루방 똥돼지, 삼겹살집만 있다

  새로 들어온 대형할인마트가 문어처럼

  이 누추한 동네 구석구석에다

  빨판을 들이대고 돈을 흡착한다

  참말로 이 동네에는

  어디서 냄샐 맡고 왔는지

  뉴타운 ․ 재개발 부동산업자들이

  피라냐처럼 우글거린다

  이 동네에도 英數학원버스가 들락거리고

  폐지 팔아 만든 돈 뜯어가는 아들이 있고

  간통이 있고 집 나간 여편네가 있다

  천막지붕의 구멍가게에서는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먹고 싸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들을 팔고 있다

  건달들이 많아 당구장이 잘되고

  삼천 원짜리 손칼국수가 잘 팔리는 동네

  내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입구도 모르는 이 동네가 뜯기면

  끽 소리도 못하고 짓뭉개져서

  어디로 흘러가 사라지나, 사라지나

 

웹진 『시인광장』 2011년 4월호 발표

 

 


 

최서림 시인

1956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 본명은 최승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同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음. 1993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 저서로는 시집으로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구멍』, 『물금』 등과 비평집으로 『말의 혀』가, 학술저서로 『한국현대시와 동양적 생명사상』, 『한국적 서정의 본질 탐구』, 『서정시의 이데올로기와 수사학』 등이 있음. 현재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