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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순갑 시인 / 뼈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

홍순갑 시인 / 뼈

 

 

  아내가 한보따리 뼈를 우린다 통 속에서 오래 우려지는 동안 뼈들은 육신을 조금씩 버렸다 뼈 한가운데로 생을 관통하는 구멍이 둥글게 드러났다 아흔둘의 생을 병실에서 쓸쓸히 하직하신 장인, 무언가 하고 싶은 말씀이 남았는지 혀를 말아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간절한 눈빛을 내 마음 속에 새기려 애썼다 몇 시간 우려진 끝에 물렁뼈가 있던 무릎과 넓적다리와 정강이뼈들은 희게 완전한 해탈을 얻었다 한 점 티끌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장인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셨을까 목울대를 울리지 못하고 삼켜진 말씀의 뼈, 아무도 건널 수 없는 길을 떠날 때의 슬픔은 남은 자의 것이다 아내는 말없이 뼈를 골라 물을 붓고 다시 오랫동안 우렸다 미처 하지 못한 말씀의 뼈를 가슴에 우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웹진 『시인광장』 2011년 4월호 발표

 

 


 

홍순갑 시인

충남 연기에서 출생. 1990년《호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깊이 들여다보다가』 외 3권이 있음. 현재 호서문학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