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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재종 시인 / 6월의 동요(童謠)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3.

고재종 시인 / 6월의 동요(童謠)

 

 

6월은 모내는 달, 모를 다 내면

개구리 떼가 대지를 장악해버려

함부로는 들 건너지 못한다네

 

정글도록 땀방울 떨구어서는

청천하늘에 별톨밭 일군 사람만

그 빛살로 길 밝혀 건넌다네

 

심어논 어린 모들의 박수 받으며

치자꽃의 향그런 갈채 받으며

사람 귀한 마을로 돌아간다네

 

 


 

 

고재종 시인 / 개기월식

 

 

이웃들과 아랫마을에 문화예술단 공연 보러 갔다가

공짜 공연 본 죄로 강권하는 만병통치약을 한 박스 이고 왔다

수십만 원 되는 외상값 미처 못 갚아서 독촉장 수없이 받았다

붉은 도장 팡팡 찍은 재산 압류 계고장 계속 받고

오밤중이건 새벽녘이건 협박 전화질 받다가

자식 직장 상사까지 알아내 전화질 한 ‘그놈 목소리’ 때문에

자식 앞길 막았다고 순창할매 홀로 제초제를 마셨다

 

전직 경찰관이라는 그 해결사의 쇠갈고리에 찍힌 삶을

캄캄하게 조문하고 있는 오늘, 개기월식의 지구라니!

 

 


 

 

고재종 시인 / 고요를 시청하다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 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고재종 시인 / 광채

 

 

석모도 방죽, 그 아득한 억새 밭에 섰더니

일몰에 젖은 네 눈동자는

되레 무슨 깊고 푸른 수만 리로 일렁거렸다

억새 때문만도 아니게 길 하나 보이지 않고

내 눈은 내 눈동자를 보지 못할 때

네 눈동자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는

저 수평선까지를 황홍(黃紅)으로 물들여놓곤

되레 넌 깊고 푸른 네 심연으로 잦아들었다

억새꽃 금발들이 하염없이 반짝거렸다

 

 


 

 

고재종 시인 / 그 희고 둥근 세계

 

 

나 힐끗 보았네

냇갈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

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들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고재종(高在鐘, 1957~ ) 시인

1957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담양농업고등학교 졸업. 1984년 실천문학사의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시 <동구밖집 열두 식구>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새벽 들><사람의 등불><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쪽빛 문장> 등이 있고, 수필집에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가 있다. 제16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 제11회 신동엽 창작기금 받음.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