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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시인 / 10월 어느 날
세월은 내게 묻는다 사랑을 믿느냐고
뜨거웠던 커피가 담긴 찻잔처럼 뜨거웠던 기억이 담긴 내게 묻는다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렌지 위에 찻물로 끓는 밤 빗소리는 어둠을 더 짙게 덮고 있다
창 밖에 서성이는 가을이 묻는다 지난 여름을 믿느냐고
김삿갓 계곡을 따라가던 물봉숭아 꽃잎새 지금쯤 다 졌을텐데
식어진 사랑도 지난 여름도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울어진 가을 밤 부질없는 그리움이 째각째각 초침소리를 따라간다
목필균 시인 / 10월의 시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목필균 시인 / 가난한 시인
지하역 바닥에 깔린 라면박스처럼 남루한 노숙을 견디게 할 시 한 줄 쓰기를
살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자간과 행간 사이의 느낌표가 붉은 피딱지로 앉아 있고
따뜻한 아파트에 배불리 먹고 앉아도 시린 손끝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촛농의 두께를 재는 밤 깊어가는 어둠을 기대고 있던 하현달빛도 뒷걸음치는 새벽녘 돌아갈 곳 없는 가난이 이마에 접힌다
차오르는 여명이 목에 걸린다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핏덩이 언어로 시 한 줄 쓰기를
목필균 시인 / 겨울 강가
스무 살 청춘은 어디로 갔나 공지천 둑길을 산책했던 그 날들 먼 길 돌아와 보니 마음 갈피에 부는 휘파람 소리
북한강, 소양강이 뒤섞여 흐르다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갔지만 그 물길 따라 연어처럼 거슬러 와 본다
콩닥거리던 가슴은 어디로 가고 자욱한 물안개로 햇살에 스며든 강물에 청둥오리 자맥질하는 풍경이 한가롭다
보이지만 잡을 수 없고 생각나지만 갈 수 없는 아득한 날들
잊혀 지면 잊혀 진 대로 기억하면 기억된 대로 내리막길 깊은 정이 그리워서 혼자가 아닌 우리를 찾아 본다
목필균 시인 / 꽃의 결별
너의 환한 미소가 시름인 줄 네가 지고서야 알겠구나
네게 주었던 한 다발의 향기는 바람 끝에 매달려 건네준 마지막 인사인 것을
바람이 그어댄 상처를 안고 소리 없이 지는 처연한 비명 봄비가 눈동자 속으로 들어온다
너를 떠나보내고 눅눅한 자리에 하루를 눕힌 밤 접어놓은 그리움의 갈피를 열고 추억에 손때를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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