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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시인 / 도둑키스
카페 문을 열고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가 들어섰다 탁탁 발을 구르며
마치 남자의 등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에스프레소
진하고 빠르게
매부리코 흰 콧수염 남자의 손가락이 메뉴판 위를 스치듯 지나갔을 뿐
마치 말이 필요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진하고 빠르게
말굽에 짓밟히듯이
매부리코 흰 콧수염 남자의 불타는 입술이 여자의 입술을 덮쳤고
붉은 조끼의 놀란 여자는 포켓 속의 움켜쥔 두 손에서 쿵쾅거리는 두 개의 심장을 느꼈다
서른 살의 가슴이 뿌리째 흔들렸나보다
창밖에는 때아닌 굵은 눈발이 흩날리고 몰려든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들이 창가에 서서 카페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혀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진하고 빠르게
채찍에 휘감기듯이
붉은 조끼의 놀란 여자는 움켜쥔 두 개의 심장이 붉게 달아오른 두 볼에서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어느새 창밖의 눈발은 그쳤으며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들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마치 남자의 급작스런 퇴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자는 포켓 속에서 간신히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라이터…… 라이터…… 라이터……
계간 『문학동네』 2010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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