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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규학 시인 / 가을과 겨울 사이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7.

권규학 시인 / 가을과 겨울 사이

 

 

1. 만추(晩秋)에 어울리는 짙은 향취

차가운 바람과 즐기고 싶어

초겨울, 열차여행의 옷을 입다

 

문득

잎을 떨군 나무 위에

나만의 집을 짓고 싶은…,

 

길섶으로

가을을 기록하는 바람과 억새

그들의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그곳에, 뭔가 있었다

 

가볍지 않은 가벼움

무겁지 않은 무거움

비움과 채움의 흔적이다

 

비움이 있기에 채울 수 있고

채움이 있기에 다시 비울 수 있는

여행이 주는 안식을 맛보는.

 

 

2. 양버즘 나뭇잎이 거리를 뒤덮었다

그리움을 찾으러

그리워할 대상을 물색해 본다

 

새삼

교복차림의 고교시절이 떠오른다

스스스-

을씨년스런 바람이 나뭇잎을 긁어모으면

나무들이 계절의 향기를 널리 퍼뜨린다

 

실로 눈물겨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차창 가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서정시의 낭송이 아름답다

 

휑당그레-, 다랑논이 썰렁하다

서정시집 돌담 위

누런 호박 덩이가 가을 논 구경에 한창이다

세월을 낚는 농부와

언덕배기를 지키는 우공(牛公)

농촌이 맺어준 자연의 한 쌍이 아름다운….

 

3. 바람이 짧게 머물다 흩어지면

동행의 존재가 더욱 빛이 나고

추억의 이야기 소리도 멀리 퍼진다

 

함께 걸어 좋은 길

만추(晩秋)의 하루가 바람으로 스러진다

초동(初冬)의 하루가 희망으로 일어선다

 

사람이 곧 풍경이듯이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불멸의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처럼

황무지 위에서 희망을 쏜다

 

한 편의 시를 쓴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기에

밥을 짓듯이 정성을 다한다

옷을 깁듯이 열정을 쏟는다

짓는 게 아니라 지어질 수 있도록.

 

 


 

 

권규학 시인 / 낙화(落花)

 

 

꽃이 진다

세상에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리

지는 꽃이야 서럽겠지만

보내는 줄기야 아쉽겠지만…,

 

정녕 뒷모습이 아름답다

잎이든

꽃이든

가야 할 시기를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그꽃

오늘 비록 속절없이 떨어지지만

내일 다시

올망졸망 예쁜 꽃망울로 오리

 

 


 

 

권규학 시인 / 눈먼 사랑

 

 

어느 날엔가 눈이 멀었다

그대가 내 눈에 들어오던 날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치고

그 다음엔 온통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해맑은 미소와

또그르르 구르는 목소리밖엔

 

 


 

 

권규학 시인 / 마음이 먼저다

 

 

너무 아픈 사랑일랑 하지 말아라

사랑이 아프다는 건

너무 아프게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너무 깊은 사랑일랑 하지 말아라

사랑에 빠져 헤어날 수 없다는 건

너무 깊이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피할 일이다

굳이 아픈 사랑 깊은 사랑일랑

뭐니뭐니 해도 마음이 먼저일 테니

 

 


 

 

권규학 시인 / 밤꽃 피는 6월에는

 

 

밤꽃 피는 6월…, 농염한 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밤꽃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 걸까?

구린내도 아니고, 구린내 비슷한 얄궂은 냄새라고나 할까?

어쨌든 밤꽃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야릇해진다.

남자인 내가 맡아도 그렇지만

특히 여자들이 밤꽃 냄새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밤꽃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남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까?

여자들도 다 같은 생각들을 할까?

궁금한 마음이야 한이 없지만 그냥 접어두기로 한다.

 

누군가 그랬다.

밤꽃에선 남자의 정액 냄새가 난다고…!

 

밤꽃은 생긴 모양부터가 다른 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것도 지나치게 달라서 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꽃은 잎이 있고 꽃대가 있기 마련인데,

밤꽃은 유난히 길게 늘어진 알갱이의 형태다.

암튼 밤꽃 피는 6월이면 밤꽃 냄새가 온 주변을 진동케 한다.

올 6월에도 밤꽃 향기 진동하는 고향의 밤나무골에 들려

진하디 진한 밤꽃 향기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

 

 


 

권규학 시인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계간 '태화문학' 수필부문 신인상(1982) <'파랑새의 꿈' 외 1편>. 월간 '한맥문학' 시부문 신인상(2004) <'초가(草家)가 있던 자리' 외 4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맥문학가협회/한맥문학동인회 회원. '늘푸른문학회' 회장. <동인시선 '늘푸른문학 6집'> 외 5권 공저. 월간 '한맥문학' '05. 3월, 이 달의 시인 <'굴렁쇠' 외 4편 수록>. 월간 '문학21' 신작특선 초대시인, '06. 3월 <'수석壽石' 외 9편, 안도섭 시인 평설>. 계간 '풍자문학' 봄의 시 초대시인, '06. 3월 <'봄을 기다리며' 외 3편>. 영남 문인회, 창간 동인시집 시 5편 수록 <'비와 그리움' 외 4편>. 월간 '시와 글사랑' 초대 시인, '06. 6월 <'현충원에서' 외 6편>. 한국 103인 명시선(9권), '석양에 걸린 바다' 공저<'바다 이야기' 외 4편>. 한국 103인 명시선(10권), '맨발로 우는 바람'

공저 <'사랑을 하려거든' 외 4편>. 한국 103인 명시선(11권) '기차에 실린 보름달' 공저 <'여행' 외 4편>. 한국 101인 명시선(12권) '새벽 江을 바라보며' 공저 <'행복재단하기' 외 4편>. 현재 공무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