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동원 시인 / 월광야화(月光野話)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7.

김동원 시인 / 월광야화(月光野話)

 

 

장마 그치고

 

싸리 향 백리를 달리는

 

내 고향 칠월 밤

 

하얗게 자로 쌓이는

 

달빛 그 아래

 

달덩이 보다 더 환한

 

엉덩이들이 둘러앉자

 

호호

깔깔

 

자지러지던 빨래터

 

 


 

 

김동원 시인 / 아낙네들

월정사에서

 

 

지전 몇 장

어버이 영생복락

빌 수 있나요

 

절 몇 번

아이들

무운 장구를 빌지 않으리

 

일주문 지나

사천왕 부릅뜬 눈

먹고 살기위한 죄라지만

등골이 오싹 합디다

 

손바닥 다 닳도록

지성으로 비는 저들

자기 위안 일뿐,

이미 내 안에

자리하고 계시는걸.

 

서 있는 곳이 극락이라며

대웅전 추녀 끝

풍경이 고개 끄떡이더라.

 

 


 

 

김동원 시인 / 이 가을에

 

 

세상만사 잠시

구둘 목 아래 잠시 밀쳐두고

만산홍엽

저 간들어지게 수놓은

비단 치마폭

소리 소문 없이

들추고 들어가

한,

사나흘

혼절하고 싶어라

 

 


 

 

김동원 시인 / 이뿐 도적놈

 

 

첫 휴가 나오든 날

자나 깨나 눈에 밟히던 동무 너덧이 모여

쇠주 잔을 돌리며

밀린 이야기 밤새는지 몰랐지

먼데 장 닭 홰를 치는데

출출하다며 즈덜 끼리 쑥덕쑥덕 분답을 떨더니,

오! 살이 통통한 장 닭,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 천둥을 쳐

설익은 걸 개걸차게 해치웠지,

그믐밤이라 쇠죽 양동이인줄도 모르고 담아서

아! 고 맛,

얘야 !

간밤에

장난꾼들이 스름 스름 받으며 키운 닭을

씨도 없이 서리해 갔구나

어이 고얀 눔덜

야?

어머이,

괜찮아유

 

 


 

 

김동원 시인 / 이웃사촌

 

 

동지섣달

설한풍 그 갈피,

 

세상에

홀로 인줄 알았더니

 

시아버님 가꾸신

강냉이 한 자루

주고 가는 이웃 아낙,

 

살강 속

숭늉 맛 나는

그들 속

내가 서 있었네.

 

 


 

 

김동원 시인 / 이젠 조국의 아들이 되어

 

 

아부지

나, 아덜

유선에 흐르는 너

애비가슴은 천둥을 치는 구나

 

어머이

막내,

애미는 그리움에 말문이 막히고

 

네가 꼭 가야할 길

가슴 쫙 펴고 당차게 가려무나

 

아들아

너는 어느새 나아닌 남을 위해

어깨에 무거운 짐 지었구나

수고로운 땀 발등을 적시는

조국의 부름을 받았구나,

 

그래

대문을 나설 때 자기를 버렸고

 

조국을 위해

너 한 몸 불태우리라 다짐했었지

 

나를 버려 전우를

나를 버려 민족을

나를 버려 조국을 사랑하는

사나이가 되어라

진짜 사나이.

 

 


 

 

김동원 시인 / 이천년 정월 초하루

 

 

아흔 넘으신 이모님

세배를 올렸다

쉰둘인 나와 아내

 

늙갱이 돈은 재수 있다는 구먼

세뱃돈 이천 원

내 안에 벌떡 일어서는 유년아

 

죽어야 할텐데 구신은 멀하누

 

건성인줄 알지만

떡국 한 그릇 거뜬히 비우시는

 

생시 적

울 엄니

뵈온 듯도 하여라.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한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2시집『구멍』출간. 2004년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운당 김용득 자서전『동화요변』출간. 2018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편저『저녁의 詩』출간. 2018년 대구문학상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 『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