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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규학 시인 / 봄과 겨울 사이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8.

권규학 시인 / 봄과 겨울 사이

 

 

바스락바스락

겨울의 노랫소리 발끝에 묻어나는

마른풀이 양탄자로 깔린

하늘과 맞닿은 겨울 들길을 걷습니다

 

어지럽게 널린 낯선 발자국 사이

까마중 열매 같은 까만 배설물들

텅 빈 텃밭, 가득한 자연의 정취

저만치 장끼 까투리가 부부애를 뽐내는

 

겨울과는 같은 듯 다른 색깔

봄과는 사뭇 다른 듯 같은 느낌

마른풀 아래로

물밀 듯 새봄의 기운이 솟아오릅니다

 

이제는 봄입니다

아니, 아직은 겨울입니다

봄인 듯 겨울, 겨울인 듯 봄인 계절

마른풀 아래로 봄의 숨결이 들리는 듯

 

 


 

 

권규학 시인 / 사람 사는 세상

 

 

가뭄이 길어지면

너무 가물다고 투정을 부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또 비 없이 맑은 날을 갈망합니다

 

그런 게 연약한 우리 인간입니다

또 그런 게 우리 사는 세상입니다

 

무사안녕의 영원한 세상은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햇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더 진해진다는

 

 


 

 

권규학 시인 /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엔

 

 

사랑이 멀리 있을 때

사랑이 멀리 있다고 생각될 때

괜히 계절마저 멀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그런지 이 가을엔

마음까지도 부쩍 멀어지는 듯합니다

 

가을 숲길을 걷다가

길섶의 움츠린 풀꽃을 봅니다

이 발걸음 저 발길에 밟히고 채여

짓이겨진 몰골에 만신창이가 된 몸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런 풀꽃도 누군가에겐 의미이듯이

이 가을엔 사랑이 메마른 음지(陰地)

우리 사회의 외진 곳을 돌아봅니다

 

휘황찬란한 도심(都心)의 한 쪽 모퉁이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버려진 땅

그곳에서도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나오고

왁자지껄 생명성(生命聲)이 들려옵니다

 

사랑이 비켜간 외로운 자리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시들어 가는 아이

그들도 식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을 잃으면 저도 몰래 웃자라는 풀꽃처럼

그들 역시 어쩌다 어른이 됩니다

몸집은 작아도, 생각은 짧아도

저도 몰래 마음만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

이 가을,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권규학 시인 / 세상의 남자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다는 논리 앞에서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가 없고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는 슬픈 현실에

때론 죽음을 도피처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죽음보다는 버림받는 게 더 두렵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허탈감에 빠지고 마는……,

 

말이 많아서 수염이 나지 않는 게 여자라지만

여자보다 말 많은 남자가 더 많은 요즘

그런 남자의 턱에도 수염이 나지 않는 걸까?

아무리 둘러보고 재 봐도 알 수 없는 여자의 속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도 속이 보이지 않는다는…,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에

정도(正道)보다는 사도(邪道)로 빠지기 쉬운 법

그렇기에

바른 길을 가고자 말(馬) 머리를 돌리는 건

배신(背信)이라기보다는 결단(決斷)이라 할만하다

굶주린 맹수가 사슴의 목을 물어뜯는 건

죄악이 아닌 생존을 위한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남자들이여!

속이 보이지 않는 여자에게 집착하지 말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정처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비록 속절없는 세월에는 꺾일지라도

절망이나 무지한 힘에는 결코 부서지지 않기를

 

 


 

 

권규학 시인 / 세월의 강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데

한 뼘조차 가까워지질 못했다

 

막무가내 떼를 쓰고 싶어도

그러기엔 나이를 너무 먹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엉겨 붙고 싶은데

그러기엔 아직도 쌓은 경험이 적다

 

주고받은 소식에 설레었던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었을 뿐

 

그저 세월 따라 흐르고 흘러

물처럼 바람처럼 부대끼노라면

지워질 건 저절로 지워질 것이고

사라질 건 조용히 사라지고 말

 

 


 

권규학 시인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계간 '태화문학' 수필부문 신인상(1982) <'파랑새의 꿈' 외 1편>. 월간 '한맥문학' 시부문 신인상(2004) <'초가(草家)가 있던 자리' 외 4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맥문학가협회/한맥문학동인회 회원. '늘푸른문학회' 회장. <동인시선 '늘푸른문학 6집'> 외 5권 공저. 월간 '한맥문학' '05. 3월, 이 달의 시인 <'굴렁쇠' 외 4편 수록>. 월간 '문학21' 신작특선 초대시인, '06. 3월 <'수석壽石' 외 9편, 안도섭 시인 평설>. 계간 '풍자문학' 봄의 시 초대시인, '06. 3월 <'봄을 기다리며' 외 3편>. 영남 문인회, 창간 동인시집 시 5편 수록 <'비와 그리움' 외 4편>. 월간 '시와 글사랑' 초대 시인, '06. 6월 <'현충원에서' 외 6편>. 한국 103인 명시선(9권), '석양에 걸린 바다' 공저<'바다 이야기' 외 4편>. 한국 103인 명시선(10권), '맨발로 우는 바람'

공저 <'사랑을 하려거든' 외 4편>. 한국 103인 명시선(11권) '기차에 실린 보름달' 공저 <'여행' 외 4편>. 한국 101인 명시선(12권) '새벽 江을 바라보며' 공저 <'행복재단하기' 외 4편>. 현재 공무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