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동원 시인 / 술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6.

김동원 시인 / 술

 

 

첫잔은 얼떨결에

둘째 잔은 체면치레로

삼 석잔 쯤 되야

간 닢은 넙더데 허니

시상이 아름 허거덩

오오, 요쯤에서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기는 거여

지발 몸땡이도 성 찮은데 작작 좀 허시유

까지꺼 마누라 잔소리

울 넘어 호박 터지는 소리여

드더

단참에 쭉 드더

찌울랑한 시상

촌것 찌리

들썩들썩

어깨춤이나 추는 거여

 

 


 

 

김동원 시인 / 쉰다섯 살의 동화

 

 

어릴적

구구단도 못 외워

나머지 공부한 녀석

 

내 살 적이든가

다섯 살

참외서리하다 들켜 혼줄나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던

개구쟁이 동무들을

기억해 내다니

 

그 옛적

젖꼭지 물고 옹아리하며

눈 맞춰 낯익히던

보름달보다 더 크게 웃으시던

엄니 얼굴을

기억해 내려 하다니

 

소풍 날

강 돌 들추다 퉁바우에 쏘여

 

아린 손 호호 불며

징게미 자리 잡고 놀다가

해질녘

벗어 논 검정 고무신 못 찾아

돌부리 걷어차며 걷던

아린 귀가길,

나도 억울해 죽겠는데

뒤 따라 오다가 챙피해 죽겠다며

등짝을 후려칠 때

씨팔 침을 탁 뱉다가 흘끔 보니

초생 달 반 쯤 눈을 감고

 

쉰다섯

내 이마를 서늘하게 때리는

성긴 빗방울

눈물 반에 빗물 반 흐르네

 

 


 

 

김동원 시인 / 시인(詩人) 마을

 

 

古?선생님 사시는

단양군 단성면 제비봉 아래

오늘은 글 도적질 나섰더니

 

매미 울음도

척 늘어진 한 낮

선생은 출타 중이라

대문은

맷돌로 지둘러 놓고

 

뒷산 때까치

휘모리장단으로

한 자락 창을 뽑는데

 

낯익은

방울이 날 반기며

오줌을 찌리는구나.

 

 


 

 

김동원 시인 / 아! 내 고향

 

 

강릉 김씨

문화 유씨

남양 홍씨, 청풍 김씨...

두리 둥실 수수 만세

 

범 바우

웃짝 골

병풍 속

전설을 두르고

 

소, 대사창

육백년 어우러져

은행나무 아람 버는

 

오봉산

타는 놀 하 고운

청풍군 북면 사창

내 고향 좋을시고

 

 


 

 

김동원 시인 / 옛 기억에 흐르던 강

 

 

내 유년의 강

거슬러 올라가 보면

 

늘 흙강아지 되어

저지리치다 들킬 때

 

손찌검이 하도 메워

이붓 엄니로 알았지요

 

엄니 몰래 살짝

귀띔해 주시던 할머니

 

“다리 밑에서 주어 왔구먼”

 

혹시나 하고

기웃거린 거기

 

예나 다름없이

창백한 낮 달

저 혼자

살랑 살랑 흘러가데요

 

 


 

 

김동원 시인 / 오월에 본 하늘

 

 

아내는

식솔들이 남겨 놓은 식은 밥

늘 물에 말아 먹기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늦은 귀가길

나는 오밤중에도 다소곳 차려준 밥상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벗어 던질 줄만 아는 빨래거리

허리가 휘어도 말이 없기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철없이 보체는

아이들 투정에 늘 입가에 잔잔한 미소

진정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애미의 짐 벗어 던지고

여자로 살 나이건만

동동거리는 저 뒷모습에서 본

시퍼런 하늘

 

팔월장마

뿌리째 뽑힌 고목

속이 텅 빈 껍데기

오! 아내는

큰 고목이였습니다.

 

 


 

 

김동원 시인 / 용두 산행

 

 

가랑잎

발목 덮는

산에 올라보니

 

타는 저녁놀

하도 고와

넋을 놓았어라

 

허기사 내 日月도

폭 삭으면 저리

고운 물 우러나려나.

 

아뿔사

잠시 무아경에

하산길이

아득 하구나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한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4년 『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7년 운당 김용득 자서전 『동화요변』 출간. 2018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편저 『저녁의 詩』 출간. 2018년 대구문학상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 『텃밭시인학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