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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일 시인 / 박판돌 씨 입술에는 물꼬가 있다.
1.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으로 살고 싶다고 귀농을 한 박판돌 씨. 팔 년째 방치된 묵정논의 물꼬를 찾습니다. 천수답에 물길 건네주던 물꼬는 성문(聖門)이라며, 굳이 그 문턱에 농주 한 잔 올려야 한다며, 한참이나 잡목림이 된 논두렁을 뒤적입니다.
2.
논둑 넘지 못하는 경운기가 헛바퀴를 돌린다. 땅, 땅, 땅, 땅, 곡선을 정복하려는 곧은 소리가 터어엉, 터어엉, 굽은 소리로 되돌아 나온다.
곡선은 외부인 출입금지의 금줄.
박판돌 씨가 경운기 소리를 내버려둔 채 논둑에 눕는다. 산등선을 넘지 못하는 메아리를 듣는다. 두리넙적한 입술에 미소를 심고 하품을 기른다.
묵정논처럼 잠든 입에 바람 한 섬 고인다. 숨결이 논물을 내려주듯 들락거린다. 산등선 한 자락이 그림자를 들인다.
3.
삽질로 논바닥을 일구는 등판에 젖는 면적이 넓어집니다. “어구구구구구구”, 경작을 최초로 시작한 여자의 감탄사도 들립니다. 등판이 경작한 저 입소리로 그 옛날, 누군가 얼굴이란 명사를 만들었겠습니다.
4.
박판돌 씨가 제 입술에 농주 한사발 올린다. 잘 익은 진양조 가락에 산등선이 휜다. 휘우청, 취한 걸음을 등굽잇길이 받아준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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