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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사라 시인 / 폭우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5.

이사라 시인 / 폭우

 

 

  곡비처럼 서럽게 우는 비를 버릴 수 없는

  조그만 섬처럼

  거친 등을 지니고 잔뜩 웅크린 사람들이

  용산역에서 하릴 없이

  계단 밑을 파고드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멀리 따듯한 손을 놓고 온

  깍지 낀 손이

  갈래갈래 낯선 길처럼 갈라져 있고

  그 사이로 철로가 선명하다

  하중을 견디는 침목 따라 살아온 이들이 아는 밤들

  무수히 비가 쏟아지고

  가슴팍으로 물이 고이다가 넘치고

  옹이처럼 마디마디가 슬픈 관절이 된다

 

  이 비 개이면

  무지개 뜨는 행운은 다시 빗겨가고

  두 눈에 보이는 낡은 것들은 더 낡아가고

  두 눈을 벗어나며

  날아오른 것들은 더 높게 날아오르겠지

 

  한참을 울던 사람들은

  등 뒤에서 언제나 감당 못할 비가 온다

  떠나면 되는 일처럼 그렇게 날들은 가고

 

  한 때를 푹 적셔본 사람은

  잠결에도 비가 온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9월호 발표

 

 


 

이사라 시인

1953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1981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미학적 슬픔』,『숲속에서 묻는다』,『시간이 지나간 시간』,『가족박물관』이 있음.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