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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 / 이유
오늘 아침 그 간판이 떠지지 않는 눈 비비며 미소하는 이유는 그래서 거기 내리는 안개가 세상을 허옇게 칠하며 일어서는 이유는 그래서 바람 한 줌이 바위들의 어깨 위에 냉큼 올라앉는 이유는 그래서 이슬 한 방울이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이유는 부지런히 산을 오르며 모든 풀잎의 뺨을 쓰다듬는 이유는 모든 풀잎의 뺨 위에서 또로로록 빗방울과 손을 잡는 이유는 조만간 황금빛 햇님이 긴 치마를 펄럭이며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강은교 시인 / 23층의 햇빛
지금 막 심장에 도착했어 뼈 하나를 지났다구
간을 지나 콩팥을 지나
갈거야, 너의 피로
그림자가 오면 그림자를 기대게 하면서 눈물이 오면 눈물을 기대게 하면서 바람이 오면 바람을 기대게 하면서
햇빛의 금빛 손가락 끝에서 그림자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새까만 그림자의 손톱들이 차가운 벽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갈거야, 너의 핏 속으로 별이 오면 별을 기대게 하면서.
강은교 시인 / 가는 곳
달이 뜬다, 산 너머 칡 밭에는 떨어진 눈썹 몇 개 살 몇 점 홀로 채비를 서둔다.
가다가 더러 귀신 만나면 가는 곳 잊지 말고 물어두게.
강은교 시인 / 감자
감자여
거기 검은 비닐의 홑이불을 제치고 두 개의 굵은 뿌리와 백서른다섯 개의 실뿌리를 공중을 향하여 굽이치고 있는 너
온몸을 쭈글쭈글하게 하면서 금빛 욕망을 지구에 접속시키고 있는 너
네 눈물의 소금기가 베란다를 적시고 엘리베이터를 적시고 아파트 정문으로 흘러내린다
모든 향수와 모든 부재와 모든 유토피아
어쩔 수 없구나
일으켜 세우라 눈물이여,
거기 두 개의 굵은 뿌리와 백서른다섯 개의 실뿌리를 지구를 향하여 굽이치고 있는 너
강은교 시인 / 고독
잠자리한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 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 서성대는 구름 한 장 잠자리를 덮어주었네
잠자리 두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 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 서성대는 구름 한 장, 구름 곁 바람이 잠자리를 덮어주었네
잠자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네 잠자리 두 마리도 울기 시작했네 놀란 웅덩이도 잠자리를 안고 울기 시작했네
눈물은 흐르고 흘러 너의 웅덩이 속으로 흐르고 흘러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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