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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몽구 시인 / 분재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2.

박몽구 시인 / 분재

 

 

  사랑한다는 것은 익숙한 어제와 결별하는 일

  향일성의 타성이 깊이 밴

  긴 팔부터 가지런하게 자른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언제나 남의 시선을 빼앗느라

  밖으로만 돌려졌던 눈을 감는다

  겨우내 얼음의 도가니를 견뎌주었던

  단벌옷마저 벗어던지고

  매 발톱을 편 3월 앞에 맨몸으로 선다

  기름지고 반반한 땅 버린 채

  펀펀한 오지그릇만큼만 발을 뻗는다

  아름다움은 제 분수를 넘어 꾸미는 게 아니라

  아까운 것들부터 버리는 일

  잘려나간 감탕나무 분재의 상처

  아직 손댈 수 없이 뜨거운 주말

  지켜야 할 몫들의 경계를 넘어

  주인 자리를 차지한 살림살이들의

  뻔뻔스러운 얼굴 그대로 둘 수 없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바닥에 쌓는다

  술병을 제치고 장식장을 차지한

  책들을 수북한 먼지째 뽑는다

  서랍 속에서 멱살이 잡힌 채

  갑갑하게 눌려 있는 필기구들,

  금방이라도 뒤프레의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낡은 음반, 흐린 눈을 감춘 안경,

  빈 페이지들로 불룩한 가방…

  분수를 넘어 나를 치장하던 것들을 모아

  제활용 분류함에 미련 없이 쓸어넣는다

  속보다 두터운 외피들 다 벗어던지고

  보지 않아도 좋은 것들을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발가락

  애써 감싸던 신발마저 벗어 던지고

  내 속에 온전히 갇힐 때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나

  꽃샘추위 밀어내며 햇귀 한쪽 비쭉 내민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2월호 발표

 

 


 

박몽구 시인

1956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영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77년 월간 《대화》 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자끄린드 뒤프레와 함께』,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등의 10여권이 있음. 현재 '5월시' 동인이며 계간 『시와 문화』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