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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현락 시인 / 달의 시간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2.

신현락 시인 / 달의 시간

-오이도

 

 

  여기 바다는 민물과 몸을 섞으면서 소금을 낳지 못 하게 되었다.

  염전조차 매립되어 섬 전체가 소금무덤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수도권의 새로운 명소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해안의 불빛이 흘러넘친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달라는 낙서를 몸에 두르고

  방파제 끝에 솟대처럼 서 있는 빨간 등대,

  달의 해안으로 날아간 새의 발자국 안에서 선홍빛 구름이 떠다닌다.

 

  기억에 날짜변경선이란 게 있다면 그곳 어디쯤이다.

  소주 한 잔에 한 점 노을을 떠먹으며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지점에서

  달의 지도는 가끔씩 구름을 유산하였던 소금창고를 지난다.

 

  바닷물이 햇빛의 온도를 따라갈 때

  저무는 몸 위에 소금을 뿌려주는 시간을 달이라고 부르는 건

  갯벌이 바다의 자궁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런데 염전으로 가는 길에서

  노을처럼 사라지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달과 만나는 것은 섬이 아니라 무덤에 염장해둔

  소금 아이의 초경의 바다이다.

  서먹한 표정으로 늙어가는 섬은 생의 연대기보다 천천히 삭아 내린다.

  나는 일찍이 이곳을 지나왔으나 기억의 내상에 뿌려지는 소금의 두께에 따라

  폐경의 차이가 생기는 것임을 지금까지 알지 못 한다.

 

  그것은 바닷물이 바람을 따라가는 철지난 연애에 속하는 일이어서 더 이상 달의 시간을 밀어 올리지 못하는 참회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한다. 고백하건데 내 참회록은 단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맑고 뜨거웠던 시간을 비워버린 푸른 소주병은 비로소 재가 된 입술을 바람에 띄운다.

  등대……. 한 줄기의 소금문장이라도 세우고 싶은

  어떤 풍경이 사원처럼 비밀한 통로를 갖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돋아나는 달의 시간으로 읽는다.

 

  물의 인력에 불타는 소금을 뿌려주는 시간은 중력을 이탈하기 직전의 일이다. 기억의 날짜변경선을 떠다니던 구름의 비늘이 벗겨진다. 손을 들어 만져본 노을색이 비릿하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2월호 발표

 

 


 

신현락 시인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따뜻한 물방울』과 『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과 논문집『한국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